
베이비부머들 중 많은 사람이 시골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이제 은퇴해 전원생활의 꿈을 안고 시골에 들어온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으로서 거제의 한적한 곳에 소박한 집과 텃밭을 마련하였고 이것저것 채소와 꽃나무들을 심어놓고 흐뭇했다.
그런데 전원생활은 낭만 못지않게 어려움도 있다. 장마가 지나고 땡볕이 내리쬐면서 힘차게 자라는 잡초·바랭이·쇠비름·띠풀… 이름도 모르는 온갖 풀을 바라볼 때마다 그것을 뽑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린다. 이 골칫거리 잡초와 친구가 될 수는 없을까.
피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하고 편하게 받아들여 마음도 편안해지고 싶다. '야생초 편지'라는 책에 보면 교도소에 오랫동안 수감생활을 하면서 잡초 하나하나에 온갖 정성을 들여서 세밀화를 그리는 모습이 나온다. 그 저자에게 그렇게 소중했던 잡초가 왜 나에게는 거대한 시련처럼 다가오는가? 결국 생각해보면 잡초는 그냥 잡초일 뿐인데 사람의 마음에 따라 잡풀도 될 수 있고 그림의 귀한 모델도 될 수 있다.
풀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인간이 이 모든 잡초들에게 이름을 붙여놓았겠지만 그 이름을 모르는 나의 무지에서 뭉뚱그려 '잡초'라 하지 않는가? 쇠비름·엉겅퀴·개똥쑥…. 한때 유행하듯 어떤 풀의 효능이 알려지기도 한다. 다른 잡초들은 다만 인간이 아직 그 효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뿐이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내 친구가 엉겅퀴를 보더니 자기 나라의 국화라고 했다. 아하! 그렇구나! 우리가 무심코 보는 잡풀이 어떤 나라에서는 국화도 될 수 있구나! 그 후에는 엉겅퀴를 볼 때마다 스코틀랜드를 생각하게 된다.
다시 한편 생각해보면 이렇게 무성히 잡초가 올라온다는 사실은 바로 이 땅이 그렇게 풍성하고 햇빛과 물과 공기가 적합하다는 표시이니 인간인 나의 몸에도 좋지 않겠는가!
경계는 인식의 주체인 마음이 오감을 사용하여 인식의 대상인 현상세계를 만나는 지점인데 이 경계를 당해서 분별하고 집착하는 마음을 놓아버리면 대립과 갈등이 없어진다.
인간은 점점 오만해지고 소통은 더 힘들어가는 이 시대에 자연과 이웃과 함께하며 작은 곤충과 잡초 한 포기도 편하게 받아들이고 싶다. 이제 젊음의 질풍노도는 지나갔으니 지금부터는 내려놓고 비우는 한가로움의 여행을 떠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