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했지만 마음은 따뜻했습니다”
“가난했지만 마음은 따뜻했습니다”
  • 김석규 기자
  • 승인 2007.1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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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용진 거제시 조선해양관광국장

거제시에선 처음으로 서기관 정년퇴임 1년6개월여를 남겨두고 ‘명예퇴직’을 선택, 공직사회가 모처럼 활기를 찾았다.

원용진(元容珍·59·사진) 조선해양관광국장과 백종철 총무국장이 정년퇴임 1년6개월을 앞두고 거제시 공무원의 인사적체 해소와 후배들을 위해 ‘명예퇴직’의 용단(勇斷)을 내렸다.

오는 연말 퇴임을 앞둔 원 국장을 지난 17일 조선해양관광국장실에서 만나 그 동안의 공직생활에 대해 들어봤다.

동부면 산양리가 고향인 그는 통영동중, 통영수고를 거쳐 1969년 통영수산전문대학 졸업 후 형과 가구점을 함께 하다 제대 후인 1974년 새 일자리로 창원시 어촌지도직(임시직)으로 일을 시작했다.

맡은 일에 열심이든 원 국장은 상사의 눈에 띄어 경남도청 수산 8급으로 특채돼 1980년 8월11일 경남도청 수산국에서 첫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과장이 자기소개서를 한글과 한문으로 써 오라고 했는데 한문을 몰라 한글로만 써 갔더니 보직을 3일째 주지 않더니 아무도 하지 않으려던 자리(삼발이 설치하는 부서)가 비어 다행히 보직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부단한 노력 끝에 지금은 한글보다 한문을 더 빨리 쓸 정도가 됐다고 귀띔했다.)

이후 1998년 하동군 수산과장, 금남면장, 1999년 거제시 해양수산과장을 거쳐 2006년 7월 서기관으로 승진, 조선해양관광국장으로 부임했다.

“가난했지만 마음은 따뜻했다”고 27년여의 공직생활을 설명한 원 국장은 지난 2002년 태풍 ‘매미’때 터졌던 어업피해보상금 과다청구로 거제시 공직자와 어업인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것을 막지 못했던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했다.

“가두리 양식장 입식량을 신고토록 돼 있지만 신고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제재규정이 없고, 언제 얼마만큼을 팔았다는 것에 대한 기록도 남기지 않아도 되는데다 가두리 양식 규모에 대한 규제도 없어지면서 일어났던 일이지만 돌이켜보면 안타깝기 그지없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나 보람된 일도 많았다.

1999년 거제로 유입되는 낙동강 쓰레기 처리를 거제시민들의 세금으로 치워야 하는 것에 대한 부당함을 당시 양정식 시장에게 건의했고, 양 시장이 남해안 6개 시장·군수 협의회에 상정, 도지사가 해양수산부에 건의해 법령개정을 통해 정부가 해양쓰레기 처리비용 전액을 지원토록 한 것이 보람이라면 보람이다.

또 4면이 바다에다 고깃배가 4천척인 거제시를 대표할 고기 선정을 위해 시민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와 설문조사를 통해 시어를 ‘대구’로 정한 것도 보람이다. 그 영향으로 오는 22일과 23일 올해로 3회째 거제대구축제가 외포항 일원에서 열린다.

원 국장은 후배 공무원들에게 “처음 공무원 할 때는 내가 제일 먼저 와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와 청소하곤 했는데 과장(사무관)이 돼도 내가 사무실 문을 열었다”면서 “세상이 바뀐 탓으로 이해도 되지만 부지런하고 성실하면 그 보람은 반드시 되돌아 올 것”이라고 주문했다.

“아버지가 공무원이었고, 나도 공무원으로 참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해 아들에게도 공무원 하라고 권유했더니 ‘아버지한테 가장 기억나는 말이 「없다(박봉으로 아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지 못해 했던 말)」라는 말이어서 공무원 하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모든 공무원들이 자식들한테 이런 말은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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