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炳道<br />
<br />
재일교포이십니다<br />
<br />
天然&#28201;泉 かんなの湯 長瀞キャンプ ムクゲ自然公園 秩父土建株式&#20250;社 小さなホテル セラヴィ &#27178;&#28716;生コン株式&#20250;社 株式&#20250;社 メトロ <br />
<br />
위와 같이 사업을 많이 하시는분이십니다.<br />
<br />
얼마전 관동대지진 위령탑도 일본최대크기로 건립하시고,무궁화공원도 조성하시고<br />
<br />
한국에는 공시가12억(실거래가60억) 땅도 기부하시고 다른사람들의 눈에는 존경받을 일을 많이 하신분입니다.<br />
<br />
이글을 쓰는 저는 尹炳道씨의 아들입니다.혼외자입니다.<br />
<br />
尹炳道씨와 저의 어머니는 1971년 한국 서울에서 만났습니다.<br />
<br />
尹炳道씨는 일본에 가정을 가지고 있으신 중에 저의 어머니를 만나셨습니다.<br />
<br />
그 당시 尹炳道씨는 나이는 40세이였고 저의 어머니는 19세였습니다.<br />
<br />
두분은 한국에서 잠시동안 동거를 하셨고 그 기간중에 저의 어머니가 임신을 하셔셔 저를 1972년에 출산하였습니다.<br />
<br />
尹炳道씨는 제가 1살되던해 까지는 저의 어머니와 계속 만남을 가지셨고 1973년도에 일본으로 입국하시고 저의 어머니와 연락을 하지않았습니다.<br />
<br />
20살이였던 저의 어머니는 저를 혼자키우기 시작하셨습니다.일본에 있는 尹炳道씨에게 편지도 해보고 전화도 해보았지만,尹炳道씨는 저의 어머니를 피하셨습니다.<br />
<br />
저의 어머니는 참고 기다리다 보면 尹炳道씨의 자식을 낳았기에 연락이 올거라 믿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br />
<br />
저의 어머니는 여행사직원으로 근무하시면서 저를 잠시 할머니께 맡기셨습니다.<br />
<br />
제가 4살되던해에 다시 저의 어머니하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때 저의 어머니는 또한번 尹炳道씨께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 당했습니다.<br />
<br />
어머니는 직장을 다니셨고 전 어떤아줌마한테서 있게 되었습니다.<br />
<br />
그때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br />
<br />
그 아줌마한테 많은 구타를 당한기억과 그집 자식들한테도 구타를 당한기억이 있습니다.<br />
<br />
잊혀지지 않는 기억은 그 아줌마식구들은 따뜻한방에서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었지만 저는 <br />
<br />
현관입구에서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와 같이 그릇에 밥만 받아서 먹었습니다.<br />
<br />
반찬은 물에말은밥과 김치몇조각 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br />
<br />
이 사실은 알게된 어머니는 저를 다시 외할머니께 맡기셨습니다.<br />
<br />
하지만 저의 외할머니도 생활이 어려웠습니다.시장입구 모퉁이에 비닐로 임시천막을 만드시고 미싱을 하셔셔 어렵게 하루하루를 이어갔습니다.<br />
<br />
전 할머니께서 시장에 가시면 동네를 떠돌면서 밥을 구걸해서 먹었습니다.어떤집에서는 너무 자주먹으러 온다고 쓰레기를 온몸에 덮어 쓰면서 거지란 소리도 들었습니다.<br />
<br />
이 이야기를 들은 할머니가 저를 시장에 같이 데리고 가셨습니다.<br />
<br />
그나마 할머니하고 시장에서는 밥은 못먹어도 국수는 먹을수 있었습니다.<br />
<br />
임시비닐천막이 얼마나 추웠던지 할머니는 박스로 바람막이를 만들어주시고 전 그박스안에서<br />
<br />
있다가 할머니와 같이 집으로 왔습니다.<br />
<br />
외할머니집이라고 해봤자 봉천동 산동네 단칸방이였는데 할머니와 제가 누우면 더이상 공간이 없는 작은방이었습니다.<br />
<br />
그렇게 지내다가 제가 7~8살쯤에 어머니께서 저와 함께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br />
<br />
그 이전에 어머니는 일본에 있는 尹炳道씨게 몇번 연락을 하였지만 또 다시 거절을 당하였습니다.어머니는 尹炳道씨가 가정이 있어서 그래도 그 가정을 깨지 않기 위해 참으셨다고 합니다.<br />
<br />
그렇게 어머니는 그동안 조금씩 모은돈으로 아주 조그마한 중국집을 운영하시게 되었습니다.<br />
<br />
그 어린나이에 배탈통을 들고 열심히 일하셨던 기억이 납니다.<br />
<br />
하지만 그 중국집마저 잘 않되서 결국 망하게 되었고 어머니는 다방(찻집)이라는것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전 또다시 어머니의 얼굴을 거의 볼수가 없었습니다.<br />
<br />
학교에서는 아버지없는 놈이라고 소문이나서 매일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았으며,동네에서도 아버지 없는 놈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으며 자랐습니다.<br />
<br />
심지어 동네가게에서는 저를 도둑놈으로 몰아 세운적도 있습니다.<br />
<br />
이렇게 생활하던중 드디어 尹炳道씨께 연락이 왔습니다.제가 11살때로 기억이됩니다<br />
<br />
그러나 그것은 저를 호적에 입적하기 온것이 아니고 저를 다른집에 양자로 보내기 위해서 온 연락이었습니다.<br />
<br />
저의 어머니는 그 제안을 거절 하셨습니다.<br />
<br />
그리고 어머니는 조금 시간이 흐른뒤에 지금의 양아버지와 결혼을 하시게 되었습니다.<br />
<br />
尹炳道씨에 대한 미련을 버린것입니다.<br />
<br />
그렇게 시간을 흘러 1998년으로 오게 되었습니다.<br />
<br />
1998년 1월에 제가 尹炳道씨를 찾아 갔습니다.한국에 있는 양아버지의 반대를 이겨내고 갔습니다.그 당시 尹炳道씨는 저를 아들이라고 인정은 했습니다.<br />
<br />
하지만 호적에는 입적은 안된다고 하셨습니다.<br />
<br />
얼마후에 尹炳道씨와 어머니께서 잠실롯데호텔에서 만나셨습니다.어머니께서는 尹炳道씨께 원망과 위자료및양육비를 요구할수 있었지만,않하시고 대신 지금부터라도 저를 아들로 인정하고 보살피며 한국에 건물한개를 사달라고 하셨습니다.그자리에서 尹炳道씨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하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아니하였습니다.<br />
<br />
돈을 조금주시면서 각서(이돈으로 호적도 올리지말것이며,다시는도움을청하지말라는조건의각서))를 받아갔습니다.<br />
<br />
전 그냥 각서를 써주었습니다. 그리고 尹炳道씨를 아버지라 생각 않하고 잊고 살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br />
<br />
1998년부터 저는 많은 방황을 해야만 했습니다. 한국 양아버지 호적에 남아있을수도 없고<br />
<br />
그렇다고 일본에 있는 尹炳道씨 호적에도 입적 할수도 없었습니다.<br />
<br />
제 인생이 너무나 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 이리저리 떠돌면서 방황하며 살았습니다.<br />
<br />
그러던중 2006년 몸에 이상을 느끼고 몸무게가 20키로 이상 줄어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습니다. 검사결과는 당뇨였습니다.당뇨는 尹炳道씨가 가지고 있는것으로 저에게도 유전된겁니다.심각한 합병증까지는 아니지만 이미 시력과 신장에 이상이 생겨 정상적인 생활은 어려운상황입니다.<br />
<br />
2007년 8월에 또다시 병원을 찾아갔습니다.의사가 인슐린을 투약해야하며 시력과 신장이 많이 않좋다고 하였습니다. <br />
<br />
전 일본에 있는 尹炳道씨께 마지막으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br />
<br />
제가 가진돈도 없었고 여기한국에 어머니께 부담을 줄수 없었기에 치료만 좀 해달라고 도움을 청했습니다.<br />
<br />
하지만 尹炳道씨는 거절하였습니다.현재 尹炳道씨는 회사가 다 부도나서 가진게 하나도 없다면서거절을 하였습니다. 오히려 저에게 자기를 만나면서 왜 일본어를 안배웠고,자기자식이라면 일류대는 갔을것이고,해마다 연하장도 안보냈다고 좋지않은 이야기를 했습니다.<br />
<br />
그러나 9월달에 신문에서" 재일교포 尹炳道 공시가12억(실거래가60억)땅 기부"라는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전 또한번 尹炳道씨께 실망을 하였습니다.<br />
<br />
어머니는 저에게 친생자확인소송을 하라고 하셨고 전 바로 변호사를 통해 친생확인소송을 하게 되었습니다.<br />
<br />
하지만,尹炳道씨는 친생자확인소송을 시작하는것과 동시에 사라져버렸습니다.<br />
<br />
비서에게 전화를 해도 어디에 있는지 알수가 없다고 했습니다.<br />
<br />
尹炳道씨는 한번은 만나겠다고 하면서 계속 시간을 지연시켰습니다.저와 어머니는 믿고 기다렸지만,지금까지도 만날수가 없습니다.왜 지금까지 시간을 지연시킨 이유를 모르겠습니다.<br />
<br />
단지 비서를 통해서 들은 이야기는 尹炳道 자신은 저의어머니와 저에게 해줄만큼 다 해줬다고 더이상 해줄것이 없다고 만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br />
<br />
도대체 무엇을 해주었다는 것입니까?<br />
<br />
저의 어머니가 19살에 尹炳道 당신을 만나 저를 출산해서 지금까지 수많은 고생을 하면서 흘린 눈물을 尹炳道 당신은 아십니까?<br />
<br />
제 자신도 불행하게 자란 유년시절을 당신을 아십니까?<br />
<br />
한국이 재일교포들이 입국해서 한국여자를 가지고 노는곳입니까?<br />
<br />
그로인해 출생하는 아이들은 저처럼 이렇게 아버지 없는사람으로 철저히 외면 당해야 합니까?
<br />
재일교포이십니다<br />
<br />
天然&#28201;泉 かんなの湯 長瀞キャンプ ムクゲ自然公園 秩父土建株式&#20250;社 小さなホテル セラヴィ &#27178;&#28716;生コン株式&#20250;社 株式&#20250;社 メトロ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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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이 사업을 많이 하시는분이십니다.<br />
<br />
얼마전 관동대지진 위령탑도 일본최대크기로 건립하시고,무궁화공원도 조성하시고<br />
<br />
한국에는 공시가12억(실거래가60억) 땅도 기부하시고 다른사람들의 눈에는 존경받을 일을 많이 하신분입니다.<br />
<br />
이글을 쓰는 저는 尹炳道씨의 아들입니다.혼외자입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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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炳道씨와 저의 어머니는 1971년 한국 서울에서 만났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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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炳道씨는 일본에 가정을 가지고 있으신 중에 저의 어머니를 만나셨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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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尹炳道씨는 나이는 40세이였고 저의 어머니는 19세였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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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분은 한국에서 잠시동안 동거를 하셨고 그 기간중에 저의 어머니가 임신을 하셔셔 저를 1972년에 출산하였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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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炳道씨는 제가 1살되던해 까지는 저의 어머니와 계속 만남을 가지셨고 1973년도에 일본으로 입국하시고 저의 어머니와 연락을 하지않았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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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이였던 저의 어머니는 저를 혼자키우기 시작하셨습니다.일본에 있는 尹炳道씨에게 편지도 해보고 전화도 해보았지만,尹炳道씨는 저의 어머니를 피하셨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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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어머니는 참고 기다리다 보면 尹炳道씨의 자식을 낳았기에 연락이 올거라 믿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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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어머니는 여행사직원으로 근무하시면서 저를 잠시 할머니께 맡기셨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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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4살되던해에 다시 저의 어머니하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때 저의 어머니는 또한번 尹炳道씨께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 당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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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직장을 다니셨고 전 어떤아줌마한테서 있게 되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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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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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줌마한테 많은 구타를 당한기억과 그집 자식들한테도 구타를 당한기억이 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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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지 않는 기억은 그 아줌마식구들은 따뜻한방에서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었지만 저는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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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입구에서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와 같이 그릇에 밥만 받아서 먹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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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은 물에말은밥과 김치몇조각 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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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실은 알게된 어머니는 저를 다시 외할머니께 맡기셨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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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의 외할머니도 생활이 어려웠습니다.시장입구 모퉁이에 비닐로 임시천막을 만드시고 미싱을 하셔셔 어렵게 하루하루를 이어갔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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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할머니께서 시장에 가시면 동네를 떠돌면서 밥을 구걸해서 먹었습니다.어떤집에서는 너무 자주먹으러 온다고 쓰레기를 온몸에 덮어 쓰면서 거지란 소리도 들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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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들은 할머니가 저를 시장에 같이 데리고 가셨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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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할머니하고 시장에서는 밥은 못먹어도 국수는 먹을수 있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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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비닐천막이 얼마나 추웠던지 할머니는 박스로 바람막이를 만들어주시고 전 그박스안에서<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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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가 할머니와 같이 집으로 왔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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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집이라고 해봤자 봉천동 산동네 단칸방이였는데 할머니와 제가 누우면 더이상 공간이 없는 작은방이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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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지내다가 제가 7~8살쯤에 어머니께서 저와 함께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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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전에 어머니는 일본에 있는 尹炳道씨게 몇번 연락을 하였지만 또 다시 거절을 당하였습니다.어머니는 尹炳道씨가 가정이 있어서 그래도 그 가정을 깨지 않기 위해 참으셨다고 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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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어머니는 그동안 조금씩 모은돈으로 아주 조그마한 중국집을 운영하시게 되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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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린나이에 배탈통을 들고 열심히 일하셨던 기억이 납니다.<br />
<br />
하지만 그 중국집마저 잘 않되서 결국 망하게 되었고 어머니는 다방(찻집)이라는것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전 또다시 어머니의 얼굴을 거의 볼수가 없었습니다.<br />
<br />
학교에서는 아버지없는 놈이라고 소문이나서 매일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았으며,동네에서도 아버지 없는 놈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으며 자랐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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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동네가게에서는 저를 도둑놈으로 몰아 세운적도 있습니다.<br />
<br />
이렇게 생활하던중 드디어 尹炳道씨께 연락이 왔습니다.제가 11살때로 기억이됩니다<br />
<br />
그러나 그것은 저를 호적에 입적하기 온것이 아니고 저를 다른집에 양자로 보내기 위해서 온 연락이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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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어머니는 그 제안을 거절 하셨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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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머니는 조금 시간이 흐른뒤에 지금의 양아버지와 결혼을 하시게 되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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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炳道씨에 대한 미련을 버린것입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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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간을 흘러 1998년으로 오게 되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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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월에 제가 尹炳道씨를 찾아 갔습니다.한국에 있는 양아버지의 반대를 이겨내고 갔습니다.그 당시 尹炳道씨는 저를 아들이라고 인정은 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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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호적에는 입적은 안된다고 하셨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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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후에 尹炳道씨와 어머니께서 잠실롯데호텔에서 만나셨습니다.어머니께서는 尹炳道씨께 원망과 위자료및양육비를 요구할수 있었지만,않하시고 대신 지금부터라도 저를 아들로 인정하고 보살피며 한국에 건물한개를 사달라고 하셨습니다.그자리에서 尹炳道씨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하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아니하였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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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조금주시면서 각서(이돈으로 호적도 올리지말것이며,다시는도움을청하지말라는조건의각서))를 받아갔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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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그냥 각서를 써주었습니다. 그리고 尹炳道씨를 아버지라 생각 않하고 잊고 살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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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부터 저는 많은 방황을 해야만 했습니다. 한국 양아버지 호적에 남아있을수도 없고<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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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일본에 있는 尹炳道씨 호적에도 입적 할수도 없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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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인생이 너무나 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 이리저리 떠돌면서 방황하며 살았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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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중 2006년 몸에 이상을 느끼고 몸무게가 20키로 이상 줄어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습니다. 검사결과는 당뇨였습니다.당뇨는 尹炳道씨가 가지고 있는것으로 저에게도 유전된겁니다.심각한 합병증까지는 아니지만 이미 시력과 신장에 이상이 생겨 정상적인 생활은 어려운상황입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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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에 또다시 병원을 찾아갔습니다.의사가 인슐린을 투약해야하며 시력과 신장이 많이 않좋다고 하였습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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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일본에 있는 尹炳道씨께 마지막으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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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진돈도 없었고 여기한국에 어머니께 부담을 줄수 없었기에 치료만 좀 해달라고 도움을 청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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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尹炳道씨는 거절하였습니다.현재 尹炳道씨는 회사가 다 부도나서 가진게 하나도 없다면서거절을 하였습니다. 오히려 저에게 자기를 만나면서 왜 일본어를 안배웠고,자기자식이라면 일류대는 갔을것이고,해마다 연하장도 안보냈다고 좋지않은 이야기를 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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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9월달에 신문에서" 재일교포 尹炳道 공시가12억(실거래가60억)땅 기부"라는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전 또한번 尹炳道씨께 실망을 하였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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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저에게 친생자확인소송을 하라고 하셨고 전 바로 변호사를 통해 친생확인소송을 하게 되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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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尹炳道씨는 친생자확인소송을 시작하는것과 동시에 사라져버렸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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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에게 전화를 해도 어디에 있는지 알수가 없다고 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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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炳道씨는 한번은 만나겠다고 하면서 계속 시간을 지연시켰습니다.저와 어머니는 믿고 기다렸지만,지금까지도 만날수가 없습니다.왜 지금까지 시간을 지연시킨 이유를 모르겠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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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비서를 통해서 들은 이야기는 尹炳道 자신은 저의어머니와 저에게 해줄만큼 다 해줬다고 더이상 해줄것이 없다고 만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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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엇을 해주었다는 것입니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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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어머니가 19살에 尹炳道 당신을 만나 저를 출산해서 지금까지 수많은 고생을 하면서 흘린 눈물을 尹炳道 당신은 아십니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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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자신도 불행하게 자란 유년시절을 당신을 아십니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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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재일교포들이 입국해서 한국여자를 가지고 노는곳입니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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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인해 출생하는 아이들은 저처럼 이렇게 아버지 없는사람으로 철저히 외면 당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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