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는 세월 그 누구가 막을 수가 있나요 / 흘러가는 시냇물을 막을 수가 있나요/ 아가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듯이….」
세월이 빠르긴 빠르다. 엊그제 정해년 황금돼지해라고 야단을 떨더니 그 많던 열 두장의 달력이 다 떨어져 나가고 이제 무자년(戊子年) 쥐띠해가 시작된다.
누가 그러는데 20대에는 세월이 20㎞로 가고 40대에는 40㎞, 60대에는 60㎞로 간다더니 그 말이 실감난다. 우리가 흔히 가장 빠르다는 표현으로 「눈 깜빡할 사이」라고 말한다. 우리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눈 깜빡할 사이의 시간이란 정확히 1000분의 1초 정도의 빠르기다.
프로 야구의 투수가 던지는 공은 시속 140㎞가 넘는 강속구다. 그런데 이 빠른 공을 타자가 방망이로 맞히는 순간은 0.001초다. 그러나 눈 깜빡할 사이와는 비교가 되지 못한다. 사람이 순간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는 속도는 바로 이 「눈 깜빡할 사이」인 1000분의 1초이며 이를 밀리초(ms 또는 msec으로 표기)라 한다.
그럼 사람의 능력 말고 기계의 힘을 빌린다면 빠른 게 무엇일까 생각하면 얼른 떠오르는 것이 총이다. 순간 속도로는 총만큼 빠른 것도 드믈 것이다. 총알이 물체를 관통하는데 소용되는 시간은 0.0000001초다.
이 빠르기를 마이크로초(μs로 표기)라고 부른다. 만일 총알의 움직임을 정지화면으로 사진에 담아내려면 마이크로초(1/100만) 속도로 여닫을 수 있는 초고속 셔터가 필요하다.
눈 깜빡할 사이, 총알이 빠르다고 하지만 이 보다 더 빠른 것이 빛이다.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돈다는 빛이 겨우 30㎝ 가는 시간을 나노초(ns:10억분의 1초)라 하고 이 빠르기는 컴퓨터 중앙장치의 속도와 같다.
이왕 빠르기를 이야기가 났으니 말인데 나노초보다 빠른 건 피코초(ps:1조분의 1초), 그 보다 더 빠른 건 레이저기술에 쓰이는 펨토초(fs:1천조분의 1초)가 있고,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빠르기는 아토(atto)초로 수치로 말하면 100경분의 1초다.
불가(佛家)에서는 빠른 시간의 흐름을 찰나(刹那)라고 한다. 찰나가 도대체 얼마만큼의 시간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다만 불경에서는 1찰나를 대략 75분의 1초 정도의 시간으로 추정한다.
힘이 무척 센 남자가 손가락을 탁하고 한 번 퉁기는 사이에 65찰나의 시간이 지나간다고 하니 「눈 깜빡할 시간」보다 계산상 다섯 배 정도 빠르기다.
기독교에서는 특별한 시간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베드로후서 3장 8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라는 말씀과 시편 90장 4절에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라는 다윗의 시로 미루어 하루란 하느님의 시계로 315억 3천6백만분의 1초의 순간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하루란 정말 짧은 시간이다.
과학이나 종교의 시간법은 왠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눈 밑의 작은 주름을 발견했을 때 당황해하던 그 순간의 느낌은 아토초로도, 찰나로도, 천년을 하루로 보는 하늘의 시간으로도 제어하지 못하는 망연함뿐이다.
중국 진(晉)나라 때의 시성(詩聖) 도연명(陶淵明)은 그의 시에서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歲月不待人)」고 했다. 사람이야 오든 말든 제 홀로 간다.
그냥 아무 소리 없이 가는 게 아니라 세월은 반드시 흔적을 남기고 간다. 돌아보면 세상이란 세월이 남긴 흔적들뿐이다.
어떤 사람은 세월이 남긴 흔적, 이를테면 이미 생겨버린 주름이나 노화의 흔적을 지우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기도 하고, 어떤 이는 추억이라는 장치를 통해 시간을 그 자리에 머무르게 만들려 한다. 그러나 다 부질없음을 스스로도 다 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천고(千古)의 진리를 알면서도 대시해 보는 태클일 뿐이다.
이제 새해다.
가는 세월을 잡을 수는 없지만 주어진 세월을 아름답게 꾸밀 수는 있다. 천년이 하루 같다 해도 하루를 천년 같이 살아가는 지혜를 가진 것이 사람이다. 나만의 시간을 채색할 수 있는 공간을 꾸려보자.
그리고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라는 천상병 시인의 한 구절을 읊조리면서 새해를 맞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