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일 비가 오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햇볕이 좋다. 기다렸다는 듯이 매미가 울어대기 시작한다. 나무가 서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매미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심지어 전봇대에 붙어서 울어대는 놈도 있다. 도시의 밤거리는 대낮처럼 밝다. 낮과 밤을 구분하지 못하는지, 밤에도 울어댄다. 어차피 인가 근처에서 태어났으니 더불어 살아가고자 함인가.
인간 세상에 적응하려 애쓰는 듯하다. 도시의 밤하늘엔 별도 달도 사라진 지 오래다. 옛날 같으면 초저녁부터 사람 하나 없었을 동네에 자정이 넘도록 북적인다. 큰 도시로 갈수록 자정까지는 밤낮을 구분할 수가 없다. 인간세상이 이럴진대 미물인들 어찌하겠는가. 안개 속을 걸었다 나오면 옷이 축축하게 젖는 이치인 것을.
매미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림인가, 듣는 사람의 가슴이 요구하는 대로 변질되어 들려준다. 뙤약볕에서 김매는 농부의 귀에는 골바람소리로 다가오고, 더위에 지쳐 계곡으로 피신한 사람에게는 개울물소리로 들려준다.
정자나무 아래나 원두막에 드러누워 한가로이 책을 보는 사람에게는 솔가지를 흔드는 소슬바람처럼 조용히 다가왔다가는 사라진다. 그러니 누군들 매미소리를 귀찮아하겠는가. 굴곡 없는 소리로 귀를 괴롭히는 남쪽 나라의 매미와는 달리, 우리의 매미는 곡조도 수반하여 정겨우니 오히려 듣기를 좋아한다.
무더위가 한창인 때에 외가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산을 돌아 겨우 외가에 도착해 보니 동네 안에는 사람의 기척이 전혀 없었다. 다들 어디로 갔는지, 골목길에는 인적이 없었다. 적막이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을 뿐이었다.
그 적막을 덮으려는 듯 앞산과 뒷산의 숲 속에서 매미소리가 시원스레 들려왔다. 그때 들은 매미소리는 얼마나 평화로웠던지, 외지에 온 나의 마음까지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참 기분 좋은 소리였다. 매미가 사람 곁에서 이렇게 좋은 존재인 줄을 몰랐다. 늘 사람 가까이 있으면서 사람들과 동화하는 매력을 가진 미물, 그것이 바로 매미다.
매미의 사는 모습을 들여다보면 참 깨끗한 삶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짧게는 칠 년, 길게는 십칠 년을 애벌레로 땅속에서 살다가 성충이 되어 지상으로 올라온다. 마침내 인고의 긴 세월을 딛고 성충이 되는 것이다. 힘겹게 나뭇가지 위로 오르면 고고한 울음을 터뜨린다. 그로부터 이삼 주 동안 노래를 부르며 살다가 알을 낳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 매미의 일생이다.
깨끗하고 짧게 사는 것이 매미의 덕목인지 모르겠다. 오래 살다보면 봐서는 안 될 풍진 세상도 만날지 모르고, 혼탁한 물가에 빠질지 누가 알랴. 긴 세월 어둡고 캄캄한 흙 속에서 제 몸 낮추고 산 세월이 헛되지 않도록 그늘로 숨어든다.
밝은 볕으로 나오지 않고 나무 그늘에서 노래나 부르다가 간다. 밝은 빛에 현혹되지 않도록 그늘에서 노래나 부르다가 가는 존재. 그것이 매미이다.
그래서 우리의 조상들은 깨끗한 선비를 매미에 비유했다. 매미는 청렴의 상징인 것이다. 무엇보다 매미는 다른 곤충들처럼 농작물을 건드리지 않는다. 옛 사람들은 매미가 이슬만을 먹고 살다가 죽는 미물로 알았다. 사실은 나무의 수액을 먹고 산다.
그러니 다른 곤충에 비하면 정말 깨끗한 삶을 사는 것이다. 매미는 결코 먹이를 저장하거나 남의 것을 빼앗아 오거나 하는 일이 없다. 남에게서 먹이를 얻어오거나 받는 일도 하지 않는다. 생존을 위한 최소의 영양분만 스스로 섭취하며 산다.
사람들 가까이 서식하면서도 결코 사람들에게 유익한 농작물을 건드리지 않는 매미. 이처럼 매미는 다른 것에 해를 주지 않고, 스스로 최소의 수액만을 취하여 먹고 살기에, 우리의 조상들은 청렴의 상징으로 매미를 꼽았던 것이다.
익선관(翼蟬冠)에는 이러한 매미의 생태를 눈여겨본 우리 조상들의 혜안이 엿보인다. 관모에 매미 날개를 상징하는 것을 달아 선비정신을 기리려했던 것이다.
매미처럼 밝은 낮에는 깨어 있고, 어두움 속에 숨어서 엉뚱한 짓을 하지 말라는 뜻으로 매미의 날개를 관모에 달았던 것이다. 다만 그것이 임금은 위로 향하고, 관리들은 양 옆으로 달린 것이 다를 뿐이다. 무릇 관리는 매미처럼 청렴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지상 보도에서 잊힐 만하면 공직자의 독직사건이 불거져 나온다. 공직을 더럽히는 사건도 가지가지다. 횡령, 복마전, 직무유기, 특혜, 군림 등 온갖 비리 용어들이 난무한다.
그럴 때마다 국민들은 더욱 분개한다. 국민의 혈세를 횡령했다는 분함도 있지만, 그 속에는 걱정도 내포되어 있다. 나라 살림을 그들에게 다 맡겨 놓았으니 그럴 만도 한 것이다. 이 같은 공직비리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모든 관청은 떠들썩하다. 청렴 결의문 채택 · 환골탈태 · 공직기강 확립 같은 식상한 말들이 고개를 든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진정 실천을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말잔치로 끝이 나기가 일쑤다. 국민들은 공직비리에 대하여는 결코 관대하지 못하다. 그 만큼 공직에 대한 높은 청렴도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나부터 매미의 덕목을 가슴 깊이 새겨야겠다. 말로만 국민을 위한다는 거북스럽고 민망스러운 수사를 영원히 버릴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그 바람은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생기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매미는 땅속에 알을 낳고 죽음을 준비하는 때가 되었다.
땡볕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면서 깨끗하게 살다가 무더위가 물러날 즈음 유랑을 떠나는 매미. 정말 별난 삶을 살다 간다. 이 밤 청렴한 매미의 삶이 나를 잠 못 들게 한다. 매미를 닮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