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스라인’이라는 것이 있었던가?
‘폴리스라인’이라는 것이 있었던가?
  • 거제신문
  • 승인 2008.01.17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일광 칼럼위원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바깥이 확성기소리 때문에 여간 시끄럽지가 않다. 확성기의 성능이 얼마나 좋은지 제법 한참 떨어진 곳인데도 예까지 쨍쨍한다.

햇볕 따뜻한 양지에서 잠시 졸고 싶어도 반가운 훼방꾼은 너무 귀에 익은 트로트 가락을 틀어 놓아 나도 모르게 중얼중얼 따라하고 있다.

그러다가 이제는 알아들을 수 없는 고함소리를 외쳐댄다. 그게 무슨 말인지 솔직히 알지 못한다. 알아들을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목소리가 아니라 격한 감정이 실린 고음이라 짜증만 유발한다. 벌써 며칠 째다.

물어 본다. 무엇 때문에 저러느냐고. 옆에 있던 동료가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 어업권에 따른 보상금의 분배 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그제야 집회의 성격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집회가 아니라 녹음소리를 틀어 놓고 데모의 존재를 알리고 있는 데 불과하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혹은 사회적 의사를 표시하기 위한 대중적인 시위운동을 데모라고 한다. 데모(demo)는 데모크라시(democracy)와 밀접한 관계다. 곧, 「민중의 정캣「민주주의」등의 뜻이 동시에 표출된다. 그러나 우리의 시위문화가 과연 민주주의적인가 하고 묻는다면 고개가 갸우뚱해 진다.

지난 세월동안 경찰은 시위대에 두들겨 맞으면서도 쉬쉬했고, 데모하면 붉은 머리띠와 「쟁취」「타도」「박살」같은 끔찍한 용어가 연상되고, 현실적으로는 심각한 출퇴근길의 교통 걱정이 앞선다.

도대체 공권력이라는 게 있는지 의심스럽고, 오죽 했으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통하는 법이 「떼법」이라 했을까.
이제 경찰은 기존의 시위 진압 방식을 바꾸겠다고 천명했다.

지금까지 소극적인 대응에서 적극적인 대응으로의 전환을 예고했다. 「폴리스라인」을 넘어서는 시위대는 현장에서 연행하는 데 주력하고, 폭력을 수반한 시위 때는 전기충격기, 최루탄, 물대포의 사용을 고려하겠다고 한다.

왜 집회를 하고 시위를 하는지에 대한 이해와 연구보다는 불법 시위 엄정 대처라는 물리력 행사가 사태의 해결책이 되는가 하는 문제는 이 칼럼의 논점이 아니다.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과연 우리 사회에 「폴리스라인」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었는가에 대한 궁금함이다.
사실 그동안 폴리스라인이란 있으나마나한 죽은 선(線)이었다.

폴리스라인을 무서워하는 시위대도 없었고, 폴리스라인을 넘어왔다고 법적조치를 취한 일도 없었다. 그러므로 폴리스라인만으로 평화적 시위가 보장된다고는 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시위대와 공권력이 동시에 이 선을 준수하겠다는 합의가 우선이다. 다시 말해 폴리스라인은 시위대와 경찰의 약속선이 아니라 시위대와 국민의 약속선이며, 폴리스라인을 범하는 순간 이제부터 공권력을 무시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폴리스라인을 넘으면 한 번 경고를 하고 그래도 어기게 되면 곧바로 체포 구금한다. 대규모 시위 때는 경고 없이 바로 체포되고, 시위 현장에 판사가 나와 영장발부를 바로 해 주고 있다. 사회 질서를 유지하겠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시위의 질서문화를 위해서 폴리스라인이 필요하듯 우리 사회에는 지켜야 할 많은 약속(rule)이 있다. 약속은 법적일 수도 있고, 양심적일 수도 있고, 관습일 수도 있다. 어떤 것이든 이런 약속으로 인해 사회는 동물적 다툼에서 벗어나 성숙한 인간사회를 구축할 수 있다.

그중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를 지칭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매우 중요한 가치다.

폴리스라인은 법적 구속력이라도 있지만 이것은 그런 것도 없다. 폴리스라인은 보이기라도 하지만 이것은 보이지도 않는다. 폴리스라인은 명확한 선이지만 이것은 불분명한 선이다.
폴리스라인은 지켰는지 안 지켰는지 금방 알 수 있지만 이것은 알기가 참 어렵다. 그러기 때문에 편리한 자기 방정식에 대입시켜 교묘하게 이용하려 한다.

외고는 잘못된 정책이라고 큰소리 친 부총리는 자기 딸을 외고에 보내 대학은 비 동일계로 진학시켰고, 대 방송국 사장은 두 아들의 병역기피를 위해 미국국적을 취득케 하고, 강남아파트가 대한민국의 부동산 원흉으로 지목하면서도 어느 청와대 홍보수석은 강남아파트 두 채를 지니고 있는 등 어디 이런 게 한두 건인가.

내가 만들면 통합당이지만 남이 만들면 지역당이고, 남들이 하는 것은 탈세지만 내가 한 일은 신고누락이고, 만원 받은 경찰관은 잘려도 수십억을 받은 자는 건재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이제 불법이나 폭력 없는 평화적 시위문화의 첫 단계로 강력한 폴리스라인을 고수하겠다는 당국의 의지처럼, 사람을 살맛나게 하는 사람으로서의 약속도 지켜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남명선생은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을 차고 다니며 그 소리를 통해 자기를 성찰했다고 했는데 사람마다 모두 가치의 폴리스라인을 확인하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san1090@hanmail.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동감1표 2008-01-18 09:44:07
경찰이 또 음주운전하다가 택시랑 교통사고 난 소식을 들었는데..
사고 낸후 도주하다가 붙잡힌 걸로 아는데,
경찰은 도주 아니라고 하고.. 바로 음주측정도 하지 않고..
시간을 끌다가 음주 측정 했다고 하더니..
아무리 정권 교체기라고 하지만 너무 어수선하다.
범죄도 많고.. 비리도 많고..ㅉㅉㅉ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