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힘’ 세상을 바꾼다
‘엄마의 힘’ 세상을 바꾼다
  • 김석규 기자
  • 승인 2006.08.30
  • 호수 1
  • 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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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 주부 분유 이물질 KBS 통해 전국에 고발

요즘 젊은 엄마들은 다르다.  뚜렷한 자기주장과 가치관, 개성과 현명함을 갖추고 있다.

거제시 30대 주부가 분유에 들어있는 이물질(알루미늄합금·철합금)을 발견, 지난 19일 ‘KBS 스페셜’을 통해 전국에 고발했다.

방송이 나간 후 갓난 아기를 가진 주부 가운데 생애 첫 음식을 모유가 아닌 분유로 먹이는 주부들은 분유를 탈 때마다 이물질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주부가 크게 늘었다.

30대 주부가 어떻게 해서 분유의 이물질을 발견하게 됐고, 오랜 싸움 끝에 KBS 스페셜 방송에 나오기까지 과정과 그 이후의 생활을 지난 24일 들어봤다.

▲ 1. 젖병에 이물질이 있는지 자석으로 확인하고 있는 주부
2. 이씨의 집을 찾은 KBS 취재팀에게 가영(가명)이의 중금속 검사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3. 가영이의 중금속 검사결과 표
4. 분유제조 일부 과정 / 사진은 KBS 스페셜 방송분
■분유에서 이물질 발견

신현읍에 사는 이모 주부(32)는 올해 1월 1일생인 둘째 가영(가명)을 낳았다.

이씨는 모유가 나오지 않자 분유를 먹일 수 밖에 없었다. 어떤 분유를 먹일까 고민하다 A사의 분유를 선택, 12개가 들어있는 분유 한 박스를 주문해 가영이에게 먹이기 시작했다.

분유를 먹이기 시작한지 4개월, 9통을 가영이에게 이미 먹인 후 이씨는 분유통에 든 분유에서 아주 조그만 이물질을 발견했다.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이물질을 골라내고 분유를 타 먹였다고 한다.

그러나 계속해서 이물질이 발견되자 이씨는 분유제조회사인 A사에 이 사실을 알렸다. 이씨는 A사로부터 분유통을 따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래서 이씨는 분유통을 조심스럽게 땄고, 이물질이 발견돼도 “분유통을 잘못 땄겠거니” 생각하며 이물질만 골라내고 분유를 계속 먹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네이버 카페 ‘거제도 엄마와 아기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거제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A사의 분유는 물론 다른 회사 분유에서도 이물질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그녀는 5월 말 A사에 다시 전화를 걸어 항의하자 며칠 뒤 A사 경남지점 관계자가 이씨 집을 직접 방문했다.

이씨는 집을 찾은 A사 관계자와 함께 분유에서 이물질을 찾게 된다. A사 관계자는 이물질을 보고는 깜짝 놀라 5분여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이물질만 보고 있었다고 한다.

이물질 가운데 가장 큰 이물질을 골라 절반은 A사가 성분분석을 위해 가져가고 나머지는 이씨가 보관했다. A사는 얼마 후 이물질의 성분분석 결과를 공문으로 보내왔다.

분유를 강한 열로 건조하는 과정에서 분유가루가 탄 ‘초분’으로 인체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분유 이물질 방송사 제보

그녀는 금속성 이물질로 생각돼 인터넷으로 정보를 검색하다 아무래도 중금속 검사를 해봐야 될 것 같아 가영이의 머리카락을 뽑아 ‘메디넥스 코리아’에 중금속검사를 의뢰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납 알루미늄 등 대부분 유해 중금속이 허용범위를 넘어선 수치를 보였다. 특히 알루미늄의 경우 허용범위 10㎍/g을 훌쩍 넘어선 15.71㎍/g이었다. 그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메디넥스 코리아로부터 “중금속을 배출하지 않고 몸 속에 계속 지니고 있을 경우 어린아이의 성장에 특히 뇌의 발달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된다.

이씨는 A사에 다시 전화를 했고, 중금속 검사비, 약값, 앞으로 있을 검사비용 등을 계산 1백5만여원을 요구했으나 A사는 거액을 요구한다며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녀의 잘못으로 중금속이 가득한 분유를 아무 것도 모르는 가영이가 먹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치가 떨리고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고 한다. 부모가 아이를 병들게 하는 지도 모른 채 분유를 먹였다는 죄책감에 빠져 분유 제조업체를 용서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씨는 KBS, MBC, SBS 등 방송사 청와대 소비자시민모임 등 곳곳에 제보를 하게 됐다. 그녀는 주위로부터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냥 이쯤에서 포기해라”는 등의 말을 들을 때마다 오히려 더 오기가 생겨 외로운 싸움을 멈출 수 없었다고 했다.

■KBS 스페셜 방송

여러곳에 제보했지만 KBS 스페셜 팀에서만 취재에 나섰다. KBS는 외국계 분유업체와 국내 분유업체의 개봉 전 분유를 종류별로 분석했다.

지난 19일 KBS 스페셜은 외국계 업체 분유에서 38%, 국산 12통 가운데 2통(17%)에서 알루미늄 합금과 철합금이 각각 검출됐다고 방송했다.

주부들은 이물질을 발견하기 위해 자석을 이용하고 있었다. 젖병에 든 분유 밑부분에 자석을 대고 이물질이 있는지 없는지 여부를 쉽게 확인하고 있었다.

분유업체에서 중요공정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현재 생산시스템으로는 2백마이크로-5백마이크로 크기의 이물질은 걸러내지 못한다고 보도했다.

또 분유나 이유식에서 나올 수 있는 유해세균 ‘사카자키균’의 실체와 사카자키균으로부터 아기를 보호할 수 있는 대책 등을 방송했다.

KBS 방송이 나간 후 농림부는 이물질 검출 원인에 대한 조사와 함께 시중에 유통중인 분유에 대해 금속성 이물질 실태 파악에 나서는 한편 학계, 소비자 단체 등과 공동으로 조제분유 이물질에 대한 안전성을 검증하고 안전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방송 후 직장인과 주부들은 이물질이 나올지 모르는 분유 대신 안전한 모유를 먹이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는 모유수유 패드, 모유 모음팩, 함몰 유두 교정기, 수유쿠션 등 모유 수유용품 판매가 늘고 있다.

직장여성들이 가슴 양쪽의 유축이 가능한 ‘스펙트라 유축기’ 등의 판매량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밖에 모유 생성을 도와주는 허브티, 유두 보호기, 가슴 마사지용 실리콘, 젖몸살 마사지 팩 등 아이디어 상품들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특히 소비자 시민모임은 지난 23일 금속성 이물질이 검출된 분유를 공개하는 등 이물질이 검출된 제품의 리콜을 권고하고 있다.

■이씨의 현재 생활

이씨는 가영이의 중금속 검사 결과에 자신의 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는 KBS의 요구에 따라 그녀도 머리카락 중금속 검사를 했다.

그녀는 모든 중금속이 허용범위 내로 아주 정상이었다. 이씨는 분유 때문인 것으로 확신했다. 태어나서 먹은 것이라곤 분유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의 영향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정수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방송이 나간 후 이씨는 주위로부터 “대단하다” “정말 잘했다” 등 격려의 말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씁쓸하다고 한다.

그녀는 “방송이 나간 후 분유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긴 했지만 가영이의 몸 속에 있는 중금속이 빠져나가지는 않았다. 3개월여 간의 긴 싸움끝에 얻어낸 승리 같지만 사실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가영이의 분유와 앞으로 중금속 검사비 등을 A사에서 책임지기로 하고 사과해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물질이 나왔는데도 그 분유를 계속 먹이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녀는 “모유가 나지 않는데 분유 말고 무얼 먹일 수 있느냐, 다른 분유에서도 이물질이 나오는데 그냥 먹여야지 다른 방법이 없지 않느냐”고 했다.

이씨는 또 “중금속을 체내로 배출시키는 약이 있다는 말을 듣고 다소 안심이 됐다. 지금은 알약 형태라 먹이기가 힘들어 가영이가 밥을 먹기 시작할 때(돌 무렵)부터 약을 먹일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오늘도 분유에서 꼼꼼하게 이물질을 찾고, 젖병에 자석을 대고 이물질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한 후 가영이에게 분유를 먹이고 있다.

그녀의 고발사건으로 거제지역에서도 분유를 탈 때마다 이물질이 있는지 없는지 자석으로 확인하는 주부들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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