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도 사겠네
집도 사겠네
  • 거제신문
  • 승인 2008.01.24
  • 호수 1
  • 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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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희 수필가

백만원이 넘는 거액의 수입화장품이 주위에서 잘 팔린다는 말을 듣고 놀라워하다 생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성급하게 비난만 할일은 아닌 듯 뭉클하니 가슴까지 쓰려온다. 여인들이 얼굴 가꾸기에 몰두하는 절실함의 연유가 무얼까 짚어본다. 공연히 슬픔까지 몰려온다. 도대체 여자들이 일생동안 얼굴에 쏟아 붓는 돈은 또 얼말까 궁금해진다.

엉뚱하지만 한번 계산해 보기로 한다. 물론 사용하는 화장품이 고가품이냐 아니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다. 또 기초화장만 하느냐 제대로 갖춰하느냐가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본격적으로 화장을 시작한 연령 대에 따라서도 엄청난 개인차는 날 것이다.

그러니 자료가 확실한 내 경우를 표본으로 따져볼 수밖에 없겠다. 이십대까진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로션 이외의 것은 바르지 않았다. 아마도 피부 따윈 의식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무모하지만 젊음 탓이었을 게다. 삼십 초반에도 마찬가지였다. 사는 게 바빠서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았으니 별로 꾸밀 필요가 없었다. 중반 이후부터 외출 시에만 화장한 것으로 기억한다.

하는 일이 햇볕 속에 노출되는 일상이었으니 피부 손상은 심각하였다. 게이지 않고 손질조차 소홀한 결과 사십대가 되자 얼굴이 건조하고 주름도 많이 생겼다. 피부색도 칙칙하여 남 앞에 맨얼굴로 나설 자신이 없어졌다. 후회스러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부랴부랴 아침저녁 기초 손질을 공들여 하게 되었다. 가게를 운영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을 접하게 되었다. 비로소 본격적으로 바탕 화장이 시작되었다. 물론 립스틱도 포함해서다. 사십 중반,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화장품값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화장품 전용 상점에서 개당 거의 만 원대를 선택하였다. 씻어내는 거부터 콤팩트까지 너덧 가지씩을 고정으로 사용하였으니 매달 십 만원은 족히 날라 갔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에센스니 기능성 제품이니 뭐니 하며 새로운 종류는 엄청나게 개발 생산되고 다양해졌다. 과학발전의 힘으로 효능 또한 우수한 것도 많다.

또 주변에서 고가의 화장품 방문판매를 시작하는 지인들이 늘어 갔다. 금액이 장난이 아니었다. 금액만큼 품질이 좋은지도 확신이 서진 않는다. 그래도 체면치레로 또는 예의상 가끔씩 사 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니 내심 그 핑계로 고급 화장품을 써 보고 싶었을 게다. 평소 내가 소비하는 가격의 너덧 배를 거뜬히 넘어 섰다.

그러니 한 달에 이삼십 만원, 일 년이면 삼백만원. 십년이면 삼천만원이 아니던가. 한 십년 이렇게 써 왔고 앞으로도 이십 년은 더 살아 있을 듯하니 그 돈이 다 얼마인가. 내가 얼굴에 덕지덕지 발라 없애는 돈이 일억을 넘긴다면.

평생 비싼 화장품만 사용하며 젊어서부터 화장을 많이 하는 사람은 그 돈이 몇 억을 넘길 것이 분명하다. 집도 사고 남을 금액이 아닌가. 평생 집 한 칸 꾸리지 못하는 사람도 수두룩한데 민망한 생각이 든다.

물론 그나마 이만큼 봐줄 만한 것도 그놈의 화장품 덕인지는 모른다. 그렇담 배은망덕의 소치인가. 어쨌든 돈 계산을 해 보니 억울하기도 하고 식구들에게 송구하고 씁쓸하고 그렇다.

엉뚱한 양심선언에 방판을 하는 지인들이 나를 외면하는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고.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가 엄연히 여자이고 예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니 아까운 금전이나 계산해 보며 아쉬워할 수밖에. 이제부터 이 노릇을 그만 둘 대안을 부지런히 찾아봐야겠다.

우주인들이 캡슐 하나로 식사를 대용하듯 최저가 초간편 법으로 피부의 젊음을 유지할 방법이 개발되기를 고대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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