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와 여유
빨리빨리와 여유
  • 거제신문
  • 승인 2008.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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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배 칼럼위원

무자년(戊子年) 새해가 밝았다. 새로운 대통령이 그것도 경제대통령이 선출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일자리도 많아질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되었으면 오죽이나 좋겠는가. 또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지난해를 돌이켜보면 살림살이도 어려웠고 나라의 경제 사정도 좋지 않아 모두가 허리끈을 졸라매고 어떻게든 먹고살겠다고 빨리빨리 허둥댔던 1년인 것 같다.

‘빨리빨리’는 한국사람을 지칭하는 별명처럼 된지가 오래이다. 동남아에 여행을 가서 식당에 가면 ‘코리아 빨리빨리’라고 외치면서 서둘러 음식을 날라다 준다고 한다.

우리의 ‘빨리빨리’는 쌀 농사를 짓는데 88번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한다고 해서 쌀 미(米?八十八)라고 한다는 설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1,000년의 역사에 걸쳐 900번 이상의 외침을 당했다고 하니 쫓겨다녀야만 했던 피난민 습성에서 유래한 것인지 어쨌든 한국사람들이 서두는데는 말 깨나 하는 것 같다.

‘빨리빨리’를 더러는 ‘빨리빨리병’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병이라고까지 비하해서 말할 수 있을까. 한때는 우리를 먹여 살리고 이 나라를 이만큼 살게 한 것이 바로 이 ‘빨리빨리’가 아니었던가.   

한국 제너시스가 직영하는 치킨 체인 BBQ 바구아다(Vaguada)가 스페인에서 ‘총알배달’로 성공하고 세계 34개국에 진출하여 한국의 음식뿐 아니라 문화까지 수출하고 있다니
‘빨리빨리’를 반드시 나쁜 것으로 치부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모든 사물은 음양(陰陽)이 있듯이 매사는 양면성이 있어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이 항상 공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중요한 일일 것이다. ‘빨리빨리’가 우리를 이만큼 먹여 살린 효자이기도 했지만 ‘빨리빨리병’이라고 비판 받을 일도 없는 것은 아닌 것이 사실이다.

그 나쁜 점은 질의 저하(低下), 공공질서의 문란함, 절차의 무시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질의 저하로는 잘 알고 있듯이 와우아파트와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같은 대형 붕괴사고 등이 있었고, 이번에 경기도 이천시 ‘코리아2000’ 냉동창고의 화재도 공사기간을 단축시키려 서둘어서 생긴 전형적인 한국형 참사라고 하지 않던가.

공공질서의 문란함에 있어도 줄서기에서 끼어들기, 지나가는 사람을 어깨나 몸을 치고도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어 남을 그것도 특히 외국인들을 불쾌하게 하는 일들 그리고 심각한 교통혼잡 등이며, 절차 무시 또한 결과만을 서두르는 급행주의, 한탕주의 등을 낳게 하니 하루빨리 고쳐져야 할 문제점인 것이다.

우리는 ‘빨리빨리’에서 서둘음은 극복하고 부지런함으로 승화되어야 할 것이다. 서둘음은 양적(量的)인 효과는 있을지언정 질적(質的)인 향상을 방해하기 때문에 질과 양을 동시에 추구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서둘음이 아니라 부지런함으로, 그리고 그 부지런함에는 여유가 곁들일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인생살이도 그렇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서둘기도 하고 부지런하기도 해야 하겠지만, 채 백년도 살지 못하는 짧은 인생에 여유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여유 있게 살다보면 알지 못했던 내가 보이고, 스쳐지나간 주위의 사람들도 보이게 된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고 여유가 무조건 느리고 게을러지자는 말은 아니다. 그렇게 된다면 생산품은 양적, 질적 향상은 물론 품격마저도 시원찮을 것이다. 삶에 있어서도 여유 속에는 문화라는 알맹이가 깃들 때라야 비로소 품격 있는 삶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배고픈데 양반(문화) 찾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고, 배부른데도 양반(문화) 찾지 않는 사람은 더욱 어리석은 사람이다”라고 누가 얘기했던가.

여태껏 우리는 ‘빨리빨리’로만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 세계인들도 ‘느리게’ 사는 슬로라이프(slow life)를 원하여 슬로시티(slow city)가 이태리에서 시작되어 우리나라에서도 신안군 증도, 장흥군의 우산슬로월드지구, 완도군 청산도, 담양군 창평면 일대를 여유와 환경 친화 그리고 전통문화를 보전하는 ‘슬로시티’로 지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 당선자의 ‘747’ 공약도 시간(時間)과 양(量)만을 추구하는 ‘빨리빨리’의 발상이 아니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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