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은 재위 기간 중 네 번에 걸쳐 왕위를 세자에게 물려주겠다는 전위파동을 일으킨다. 그 때마다 왕의 전교는 「옥새를 세자궁으로 보내라」하는 지엄한 분부였다. 옥
으로 만들었다고 옥새라는 이칭을 가진 국새가 바로 국가권력의 정통성을 상징하며 왕의 계승이나 국가권력 이양의 징표가 된다.
그러기 때문에 국가의 변란이나 임금의 승하시 옥새부터 확보하게 된다. 인조반정 때 혁명파들이 가장 먼저 했던 일이 연산군으로부터 옥새를 뺏는 일이었고, 헌종이 죽자 안동김씨 조순(金祖淳)의 딸인 순원왕후가 재빨리 옥새부터 장악하고 철종의 비(妃)를 안동김씨 가문에 넘김으로 세도정치 60년 시대를 열어주게 된다.
대원군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철종이 죽자 조대비가 옥새부터 확보함으로 가능했고, 순종의 비인 순정효황후 윤씨는 1910년 병풍 뒤에서 어전 회의를 엿듣고 있다가 매국노들이 순종에게 한일 병합 조약의 날인을 강요하자 옥새를 자신의 치마 속에 숨긴 일화가 유명하다.
조선의 옥새는 정도전의 주장에 의해 만들어졌다. 옥새의 위조를 막기 위해 「영새(榮璽)부」라는 장부를 만들어 옥새전각장 1인에게만 비법을 전수시켜왔다. 그리하여 이 시대의 마지막 옥새전각장이인 경남 산청의 민홍규씨가 우리나라 네 번째 국새를 제작하는 영광을 안게 된다.
첫 번째 국새는 한자 전서체로 「대한민국지새(大韓民國之璽)」6자가 새겨졌는데 분실되어 행방을 모른다. 약 250년 전 청나라 황제 첸룽(乾隆)이 사용했던 「태상황제(太上皇帝)」라고 새긴 옥새가 지난번 경매에서 우리 돈 54억원에 낙찰되었다. 이런 귀중한 문화재를 분실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세 번째 국새는 정부수립 50주년인 1998년에 제작되었는데 국새의 내부에 균열이 발견되어 이번에 새로 제작하게 되었으며, 금년 2월부터 훈민정음체로 「대한민국」이라 전각된 새 국새가 국가공식문서에 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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