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백자 달항아리 한 점이 지난해 3월 20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27만 2,000달러에 낙찰되었다.
우리 돈으로 약 12억원이다. 이 뿐 아니다.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학자들이 한국미(美)의 절정을 보여주는 「문화한국 최고의 명품 문화유산 40졸에 포함되어 달항아리는 문화재의 스타로 대접받고 있다.
그런데 달항아리는 아무 장식도 없이 그저 희고 둥실한 모양일 뿐이다. 모양도 대칭을 이루는 게 아니라 약간 비틀어지고 이지러진 듯 보인다.
조선시대 지체 높은 분들을 위한 예술품이 아니라 반가에서는 흔히 쓰인 것이고, 19세기 무렵에는 웬만한 가정에 한두 개씩 다 있을 정도로 흔한 물건이었다.
백자는 가마에서 섭씨 1,300도 정도의 온도로 굽는다. 가마의 구조, 불 때는 방법, 나무, 경험, 유약 등에 따라 천차만별의 변화가 생긴다.
특히 달항아리는 높이 40cm이상의 큰 항아리기 때문에 한 번에 빚지 못하고 위쪽과 아래쪽 부분을 따로 만들어 붙인 탓에 가마에서 살아남기란 더 더욱 어려운 일이다.
달항아리는 숙종조인 17세기 말부터 영정조시대인 18세기 백년도 채 안되는 기간 동안 반짝 나타났다 사라졌다. 사실 그동안 학자와 문인들은 달항아리를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날렵한 대칭과 깔끔한 몸체의 중국이나 일본 도자기에 익숙한 탓에 왕사발 두 개를 포개 논 것 같은 무심의 자연미를 느끼지 못한 탓이다.
둥글다고 해서 다 둥근 것도 아니고 희다고 해서 다 같은 색의 흰빛이 아니다. 보름달 같이 환하면서 열사흘이나 열이레 달 같은 이지러진 매력, 거기에 넉넉함이 배여 있는 너그러움과 관용의 매력이 있다.
최순우가 부잣집 맏며느리 같은 후덕함이며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이라고 극찬한 이유가 다 이 탓이다.
현재 보물로 지정된 여섯 점의 달항아리 가운데 두 점이 국보로 승격한다. 해보다는 달을 사랑했던 우리네 정서가 달항아리에 투영되어 있는 탓인지 이번 정월 보름달이 유달리 아름답게 보인다. (san109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