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화재로 밤잠조차 제대로 못잡니다”
“숭례문 화재로 밤잠조차 제대로 못잡니다”
  • 백승태 기자
  • 승인 2008.02.22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거제향교 27년 지킴이 유달순 할머니

“숭례문 화재사건으로 온 나라가 들끓는지라 밤잠도 제대로 못잡니다. 혹시 밤늦게 불순한 의도를 가진 외부인이 향교에 침입할까봐 강아지(발발이)도 밤잠을 설치는 모양입니다. 거제시에서는 대문을 잠그라고 말하지만 대문 잠근다고 도둑 안 들고 불이 안 나든가요.”

조선시대 지방교육의 전당인 거제향교를 27년째 지키며 관리하고 있는 유달순(70) 할머니. 유 할머니는 “숭례문 화재현장을 TV를 통해 안타깝게 지켜봤다”며 “혹시 거제향교에서도 이 같은 불미스런 일이 생기지 않을까하는 우려에 발발이와 함께 비상근무체제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특히 불량 청소년들이 인적이 드문 틈을 이용, 향교로 들어와 담배를 피우는 사례가 많아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라는 하소연이다.

또 숭례문 화재 이후 최근에는 부쩍 지방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소방점검 등의 이유로 피곤할 정도로 사람들이 찾아온다며 평소에도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 할머니는 지난해 작고한 남편 김도곤(75) 할아버지와 함께 거제향교 한켠에 관리사를 마련, 27년째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지역문화재인 향교를 지켜온 거제향교의 지킴이이자 역사나 다름없다.

음력 초하루나 보름이면 향교를 찾는 유림들을 위해 술상을 마련하고 석전대제가 다가오면 제물 차리기에 여념이 없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향교 주변을 청소하고 텃밭에서 마늘이나 콩 등을 심어 남새밭을 가꾼다.

향교를 관리하는 댓가로 경작지를 얻어 이곳에서 생산되는 돈으로 용돈을 마련한다.

또 날씨가 따뜻해지면 잡초와의 전쟁을 벌여야 한다. 유 할머니가 가장 힘들어 하는 일도 잡초와의 끈질긴 전쟁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할아버지가와 함께 잡초를 뽑고 제초제를 뿌려댔지만 할아버지가 작고한 올해부터는 할머니 몫으로 남았다.

대성전 명륜당 등 수천평에 이르는 향교를 돌아다니며 잡초를 제거하기란 사실상 힘에 겨워 올해는 제초제를 대거 뿌릴 심산이다.  

유 할머니는 “워낙 풀들이 많이 자라고 마당이 넓어 제초제 사는 비용도 만만찮다”며 “청소비와 인건비는 못 주더라도 제초제 구입비는 거제시나 유림들이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수차례 언급했다.

자식들도 만류하고 이제 힘에 부쳐 향교 일을 그만두고 싶지만 마땅한 후임자가 없어 당장 손을 놓을 수 없는 상태다. 게다가 젊은이들이 옛 풍습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뭘 해야 하는지를 잘 몰라 믿고 맡기기도 힘든 현실이다.

특히 할머니의 손맛이 우러나는 전통 막걸리 담그는 기법은 국보급(?)이어서 유림들로서는 놓치기 힘든 유혹이다.

유 할머니는 “술을 맛있게 담그려면 좋은 물과 맛있는 누룩을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성이 깃들어야 한다”며 “특히 술을 담그면서 생콩과 소금 한줌을 집어넣어 잡냄새를 제거하는 것이 나만의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말했다.

이어 “막걸리 맛을 수십년간 유지해오듯 거제향교도 꾸준한 관리와 보존으로 수백 수천년 이어져 지역문화재로 길이길이 남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향교와 더불어 27년을 살면서 주름살도 깊게 패였지만 세월만큼 향교도 많이 변했다는 유 할머니.

향교가 목조건물인지라 건물도 낡고 부서지고 훼손돼 이제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개·보수 됐다는 것.

또 가장 아쉬운 것은 그동안 세번이나 도둑이 들어 대대로 전해져오던 촛대나 제기, 도깨비상 문짝 등이 도난 당해 아쉽고 원통하다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대단 2008-02-26 12:42:51
할머니 대단하시군요.
우리 거제향교 잘 지켜주세요. 언제 막걸리 한번 얻어 먹으러 가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