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한 음성 앞에서
세미한 음성 앞에서
  • 거제신문
  • 승인 2008.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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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강/옥포교회 담임목사

러시아의 작가 이반 안드레예비치 크릴로프의 우화집 ‘가난한 부자들’에 보면, ‘늑대와 뻐꾸기’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늑대가 같은 숲속에 살고 있던 뻐꾸기에게 작별을 고하며 말했습니다.

“잘 있어요. 뻐꾸기 씨. 나는 이제 다른 곳으로 떠납니다. 여기 머무르는 동안 나는 조용히 살려고 했는데 지나고 보니까 그것은 나의 잘못된 생각이었소. 이곳의 인간들과 개들은 모두 심술꾸러기 약탈자들이라오. 당신이 천사 같은 마음씨를 가졌다 하더라도 그들은 곧 당신에게 싸움을 걸어올 거요”

뻐꾸기가 늑대에게 물었습니다.

“늑대님, 당신이 이곳을 떠나서 찾아가려는 곳은 어딘가요? 그곳에 가면 정말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있는 건가요?”

늑대는 확신에 찬 음성으로 대답합니다.

“그럼요. 뻐꾸기 씨. 나는 그야말로 행복이 가득한 그 새로운 숲으로 갈 겁니다. 그것은 절말 멋진 나라지요. 그곳 사람들은 양처럼 온순하고 전쟁이 무엇인지도 모른다오. 그곳의 강에는 젖과 꿀이 흐르고 있고, 모두가 형제처럼 지내고 있다는 군요. 그곳의 개들은 물지도 않을 뿐 아니라 짖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평화로운 나라에서 사는 나 자신을 생각하면 얼마나 즐거운지 모릅니다. 뻐꾸기 씨, 잘 있어요. 이곳에서는 정말 살기 힘들었소. 한낮에도 늘 주위를 살피고 조심해서 다니지 않으면 안 되었고, 밤에는 밤대로 편안하게 잘 수도 없었잖소. 이제 그곳에 가면 그런 일은 없어지는 거라오.”

그러자 뻐꾸기가 늑대에게 말했습니다.

“늑대님, 조심해서 가세요. 그런데 당신은 그곳에 가면서 당신의 사나운 성질과 이빨을 그대로 가지고 가시나요? 아니면 이곳에 놓고 가시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의 원인을 외부적인 환경 혹은 타인에게 두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지금 세상에서 평안을 누리지 못한 것은 환경 혹은 타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 환경이 바뀌고 타인들이 변화되면 삶의 행복해지고 평화를 경험할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삶에는 항상 불평과 원망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본질은 그렇지 않습니다.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내 안에 있습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늑대와 같은 사나운 성질과 이빨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는 어디서든 참된 평화를 맛볼 수 없습니다. 내 자신이 변화되지 않고는 어떤 문제도 극복하거나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내적인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까요?

엘리야 선지자의 모습에서 그 비결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스스로 죽기를 간청할 만큼 지치고 피곤하여 하나님을 원망하며 절망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호렙산에서입니다. 어떤 생명체도 찾아보기 어려운 호렙산에서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음성을 들은 후에 엘리야가 변화되고 회복되었습니다.

삶이 지치고 피곤하고 원망과 절망이 우리를 엄습할 때 우리는 어디로 피할 수 있습니까? 어디에서 회복과 변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까? 혹 여전히 원망하고 불평하며 막연히 세상이 변화되기를 기대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까?

먼저 고독함 중에 하나님과 대면하여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 중에 그분의 세미한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세상의 소란함과 죄된 욕망이 주는 내면의 거짓된 소리를 잠재우고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음성이 우리에게 있는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음성이 우리를 변화시켜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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