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똑똑해서 위험할 세상
너무 똑똑해서 위험할 세상
  • 거제신문
  • 승인 2008.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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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광 거제칼럼 위원

참 똑똑하다. 요즘 사람들의 머리는 무슨 상상의 세계에 있는 것만 같다.

「퍼뮤니케이션」 도대체 이런 말을 어떻게 만들어 내는 걸까? 우리말의 푸다, 퍼오다, 펌 이런 용어와 영어의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과의 합성어로, 인터넷상에서 서로 글이나 자료를 그대로 옮겨가는 일을 뜻하는 말이다. 놀랍게도 국립 국어원의 「2004년 신조어사전」에 등재된 낱말이라고 한다.

똑똑함의 세계는 「펌킨족」이라는 고도의 언어 조합기술을 보여준다. 「퍼뮤니케이션」을 즐기는 사람들을 일컬어 부르는 말이다.

「펌」은 「퍼다」에서 왔고, 「킨」은 영어로 「KIN」이라 쓰고 누워 있는 이 단어를 일으켜 세우면 한글로 「즐」이 된다. 누가 창작한 작명인지 모르지만 그 기발한 발상에 절로 무릎을 칠 일이다. 이 기막힌 똑똑함이 바로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다.

최근 어느 마케팅업체의 발표에 따르면 이런 펌킨족이 우리나라에 무려 1,160만 명이나 된다고 하니 퍼뮤니케이션의 위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런 탓에 네티즌의 힘으로 대한민국 대통령도 만들 수 있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좋은 매체를 똑똑한 사람들은 돈벌이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경제학 개론에 나오기도 전에 제품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마케팅의 한 방법으로 자리 잡게 된다.

드디어 오프라인 상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졌다. 마트에 좋은 물건 하나 내 놓으면 그것이 입소문을 통해 번져나려면 족히 몇 년은 걸릴 일을 온라인상에서는 순식간에 해 치운다. 댓글이라는 형식의 바이러스가 강력한 전염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엊그제는 중학생이 속옷을 인터넷 판매하여 6개월 동안 2천만 원의 소득을 올렸다는데 이는 경제를 전공하고 시장 논리를 잘 알아서가 아니라 퍼뮤니케이션을 잘 활용한 탓이다.

참 똑똑하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던가? 너무 똑똑해서 탈이다. 똑똑함이 지나치면 엉뚱한 일을 저지르기 마련이다.

소위 악플 테러리스트들의 등장이다. 물론 세상에는 순기능만 있을 수는 없다. 흑과 백이 존재하듯 역기능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이 도를 넘어선다면 문제다.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전 KBS 아나운서 노모씨의 이혼설로 출렁거리지 않나, 서울 강남에서 주점을 하는 개그맨 정모씨는 여성접대부를 고용해서 불법 영업 중이라는 인신공격으로 한 때 연예계 은퇴까지 몰고 간 어처구니없는 사건은 그래도 양반 축에 든다.

여자 가수 J씨를 일컬어 성전환자라는 악플은 기가 찰 일이다. 심지어 이 가수의 가슴이 4개라는 말도 믿고 손뼉 치는 어처구니없는 세상이다.

지금도 텔레비전에 버젓이 나오고 있는 사람 더러 죽었다고 소문을 퍼뜨리지 않나, 어떤 처녀 연예인에게는 임신을, 어떤 처녀 연예인에게는 낙태를, 어떤 연예인에게는 분만의 짐도 서슴없이 지운다.

곱디고운 어느 처자에게는 화보 촬영차 남아공에 갔다가 그곳 원주민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슬쩍 흘리면 다음 사람은 한술 더 떠서 흑인 애를 낳았다더라 하는 데까지 몰고 간다.

그 처자 연예인이 화보 촬영차 남아공까지 간 건 사실이니까 맞는다고 믿는다. 이런 말잇기 실력은 여간 똑똑한 사람이 아니면 엄두도 못낼 일이다.

이런 사건의 백미는 단연 나훈아 괴담을 들 수 있다. 「수술에 참여한 간호사로부터 직접 들었다.」「양산의 한 사찰에서 요양 중인 나훈아를 봤다.」는 등, 매우 구체적인 논리적 근거까지 제시하며 다양하게 변조된 「인터넷 소문」이 나라를 뒤숭숭하게 만들어 버렸다.

윗옷을 벗어던지고 책상위로 올라가 허리띠를 풀고, 바지 지퍼를 내린 후 「여러분 앞에서 5분 동안 보여 주겠습니다.」는 두고두고 이 이상의 흥행 쇼는 아마 보기 힘들 것이다.

「카더라」로 시작된 빌미만 제공하면 어느 틈에 눈을 굴리듯이 엄청나게 커지면서 「정말로」가 된다. 사람들은 어느 정도 아닌 줄 뻔히 알면서도 좋다고 손뼉치고, 무슨 큰 비밀이라도 알아낸 것처럼 얼씨구나 말 전하기 바쁘고, 사실이든 아니든 그게 문제가 아니라 흥미꺼리라면 입이 근질거려 가만히 있지 못하는 현대인의 관음증 증세가 탈이다.

세계 최고의 인터넷 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의 현주소 - 그건 너무 똑똑해서 위험한 세상을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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