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이 되면 산이나 바다로 피서를 떠나는 일을 바캉스(vacance)라 한다. 이 말은 영어가 아니고 프랑스어다. 프랑스 사람들은 유별나게도 바캉스를 즐긴다. 그들이 돈을 모으는 이유 중 하나도 여름이 되면 이름난 휴양지나 유명한 해수욕장에서 멋진 휴가를 즐기기 위함이다. 그런 탓으로 바캉스라하면 그럴듯한 곳에 가야하는 것으로 여기는데 그건 단지 그들의 문화일 뿐이다.
유럽에서 바캉스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유두(流頭)가 있다. 음력 유월 보름으로 올해 양력으로는 7월 17일이다. 유두는 목욕과 깊은 관계가 있다. 유두란 '동류두목욕(東流頭沐浴)'의 준말이다. '동류(東流)'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두목욕(頭沐浴)'머리 감고 몸을 씻는다는 뜻이다. 왜 하필 동쪽인가? 동서남북 가운데 해가 뜨는 동쪽이 가장 양기(陽氣)가 강한 곳이다. 귀신을 쫓을 때 복숭아가지를 꺾어 휘두르는데 이때에도 반드시 동쪽으로 뻗은 가지를 쓴다. 모두 양의 기운이 왕성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서양사람들의 바캉스처럼 유두일이 되면 문인들은 술과 안주를 준비해 경치 좋은 산천의 계곡이나 물가 정자에서 자연을 벗삼아 시를 짓고 노래하면서 풍류를 즐기는 것을 유두연(流頭宴)이라 했다. 햇밀가루를 반죽해 구슬모양으로 만든 국수를 먹었는데 이를 유두면(流頭麵)이라 했고, 밀가루를 막걸리로 반죽해 꿀팥소와 고기소를 넣어 찐 상화병(霜花餠)도 시절음식이었다.
민간에서는 그런 호사가 언감생심이고 흐르는 물이나 폭포에서 '물맞이'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민간의 계절음식으로는 보리개떡을 만들어 먹었다. 보리추수가 끝난 뒤라 보리를 빻아 껍데기가 섞여있는 채로 반죽 해서 솥에 쪄낸 것으로 모양이야 볼품 없지만 그 시절 개떡은 큰 인기였다.
유월 유두는 중국에서 건너온 풍습이 아닌 순수 우리문화다. 지금은 모든 풍습들이 다 사라지고 '물맞이'만 남아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