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품앗이
인생은 품앗이
  • 거제신문
  • 승인 2008.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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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의/거제수필문학 회원

어느 부부가 싸우지 않고 살까. 오순도순 정겹게 산다지만, 살다보면 비위도 다치고 싸움도 벌려가며 살아가는 것이 부부 사이지 않는가.

남남으로 만나, 세월이 쌓이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면서, 어떠한 말이나 표정이 상대의 비위를 건드리는 것인지 차츰 익혀 나간다. 둘 관계가 아닌 일일지라도 한쪽이 부아가 났을 때 어떻게 하면 풀리고, 자신 때문에 성이 났을 때는 또 어찌 처신하는 것이 쉽게 마음을 돌릴 수 있는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래서 사과를 한다기보다 부아를 풀어주는 배려의 여유가 생긴다. 같이 외출을 할 때나 차를 운전해 길을 나설 적에 자칫 말이나 표정이 잘못되어 부아가 나는 일이 생기면, 명쾌한 기분으로 길을 나서야 하기에, 원인을 만든 쪽이 흐린 마음을 맑혀주는 예禮를 갖춘다.

아내와 나는 바깥이나 차를 타고 가면서 티격태격하거나 기분을 상한 일이 없었다. 나의 성질이 넉넉해서가 아니고 언제나 아내의 배려 덕이었다.

혹시 내가 착각이나 오해로 부아가 났을 때도 아내는 ‘그만 마음을 푸소. 내가 잘못 생각했는가 싶소.’ 해서 시간을 끌지 않고 다독거려준다.

그 베풂은 결국 아내 자신의 몫으로 돌아가게 된다. 후일 사정을 알았을 때 맘속으로 고마움을 안다. 고스란히 되돌려 받는 아내의 몫인 셈이다. 그래서 미안함과 고마움이 둘을 단단히 얽어매는 실한 밧줄 역할을 한 것이다.

꼭 사과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라면 별일 아니라도 쉽게 물러설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상대의 마음을 풀어줘야겠다는 생각이라면 넉넉한 양보이다.

남들과 함께 있을 때,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을 때, 차를 운전할 때에 더 크게 가슴을 열어야 한다. 연 가슴들이 쌓여서 의지처가 되고, 믿음과 정이 되고, 나보다 상대가 더 귀중한 사람으로 마음에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부부 사이다.

혼기를 늦춘 부부, 재혼, 각기 다른 환경에서 오래 산 사람들이 만나면 이해의 폭이 넉넉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 각자의 개인적인 타성이 두텁게 포개어져 상대를 이해할 틈이 좁아져서다.

외형적으로 잘 어울리고 부합될 것 같지만 막상 살아보면 그게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넉넉한 재산, 화려한 집과 정원, 풍부한 학문과 뛰어난 지식, 인격이 모두가 부부의 금슬에 도움은 되겠지만, 절대적인 조건일 수는 없다.

어떤 면으로는 흠이 될 수도 있다. 뭐니 뭐니 해도 맨 먼저가 의식意識이다. 얼마나 양보하고 어떻게 배려할까 하는 것이 관건이다.

성격마저 급한 나는 아내의 배려로 두터운 토막의 인생을 무난히 넘겼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다. 나의 표정만으로 어찌해 줄까 판단해서 처방을 했다.

알고 보면 아내는 내 인생의 구원요청에 임한 셈이다. 자존심에 연연하지 않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 다음 나중에 돌려받는 따뜻한 가슴이었다.

기분이 상해 잘잘못을 가릴 일이 생기면 미루지 않고 풀어버리는 건 개운해서 좋다. 그런 습관은 자신에게도 좋다. 좋잖은 일을 오래 머금고 있는 시간만큼 상한 기분이 연장되어서다.

어떤 이유에서든 다친 마음을 쌈박하게 풀어버리면 양쪽 다 기분이 명쾌해지는 일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언제나 아내는 한발 물러섰다.

그건 나의 가슴에만 온기를 더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인생에도 윤활유를 늘리는 셈이었다. 결국 그 성품은 우리 둘의 삶에 환기를 위하는 창문이기도 했다.

우리처럼 아내가 손해를 본 경우에는 세계가 달라진 다음일지라도 그 몫은 돌아가게 마련이다. 나는 아내에게 빚을 졌다. 그리고 그 빚을 돌려주고 있다.

나를 위했던 배려에 보답하는 마음을 늘 은혜로 간직하고 지내니 그렇다. 자신의 심성 덕으로 내게 진 빚 없이 살았던 세월이 홀가분했을 터이다. 떠나는 마음 또한 가볍고 편했을 것이다. 지금 나는 배려의 품을 돌려받고 있는 아내를 무척이나 부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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