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홈쇼핑만 보면 별 필요하지도 않으면서도 전화기를 돌리는 사람, 마트에 가서 필요 이상의 물건을 사는 사람, 누가 좋다고만 하면 안 사고 못 배기는 사람, 이런 부류를 일컬어 지름신이 왔다고 한다.
그렇게 산 물건은 대개 후회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마냥 후회만 하게 되면 스트레스로 병이 날지 모른다. 그럴 때 자기를 지켜주는 심리적 방어기재가 작동하게 되는 데 곧 자기합리화다.
제일 많은 게 「역시 잘했어」하는 자기판단 존중형, 둘째는 「딴 곳에는 이 값으로 못 사」하는 절약가치형, 셋째는 「다른 사람이 사니까 어쩔 수 없었어」하는 책임회피형, 넷째는 「안 사면 스트레스니까 사는 게 건강에 좋아」하는 자위형, 다섯째는 「내가 안 쓰면 동생주면 되지」하는 용도변경형 등이다. 합리화도 넓은 의미에서는 긍정적인 사고라 할 수 있다.
이솝 이야기 중에 여우가 높이 달려 있어 포도를 포기하면서 「저건 틀림없이 신 포도일거야」라고 중얼거리는 「여우와 신포도」는 좋은 예화 모델이다.
인지(認知)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대, 신념, 행동, 지각, 인식 등의 복합적인 활동을 말한다. 그런데 이들 요소들이 경우에 따라 불일치할 때를 인지부조화라 하며 심리적 불안과 갈등을 야기한다. 이 때 두 인식 사이의 갭을 메우기 위해 나름대로의 그럴싸한 이유를 찾아 긴장상태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이 자기합리화다.
감식곤충학 전문가 길 그리섬(Gil Grissom)은 「우리가 단 하루라도 자기 합리화를 하지 않은 적이 있냐? 자기 합리화는 섹스보다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예일대 심리학자들이 인간의 합리화와 같은 능력을 원숭이도 갖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원숭이나 4세의 어린이에게도 인지 부조화가 있다는 사실이 처음 입증된 것이다.
최근 법원은 뇌물수수협의로 기속 기소된 전 전(前)국세청장에게 실형을 선고하면서 인지부조화 이론을 선고배경으로 설명해 관심을 끌었다. (san109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