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휴대폰
숲 속의 휴대폰
  • 거제신문
  • 승인 2008.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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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건수 거제수필 회원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실거리 나무의 꽃은 간데없고 꼬투리만 허공에 매달려 있다. 하늘을 향한 채 뽐내던 돛단배 같은 씨앗만 허공에 내버린 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앙상한 가지만 남겨 놓고 있다.

홍포는 일반인 통제지역이라 자연 그대로의 숲을 간직하고 있다. 거제지역에서도 남부 해안지방의 수풀은 대부분 상록수림을 이루고 있다. 바위 절벽에 올랐다.

상록수들은 겨울의 문턱인데도 싱싱한 잎을 자랑하고 그 사이 사이로 거센 파도에 점점이 떠다니는 고깃배와 여객선이 아름답다.

망산 아래 무지개가 자주 뜬다는 홍포 마을과 거제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망 거리인 손대도를 바라보며 잠시 넋을 잃는다. 다시 자동차를 몰고 홍포에서 여차 쪽으로 자연사냥에 나섰다.

숲 속의 열매들도 자취를 감추었는데 참식나무는 빨간 열매를 올망졸망 달고 있다. 이 나무의 열매를 훔쳐 먹기 위해 직박구리, 쇠딱따구리, 박새, 동박새, 곤줄박이 등 온갖 겨울새들이 모여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니 머릿속에 잠시 감미로운 선율이 감돈다.

새들은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 들리면 삼십육계 줄행랑을 쳐버린다. 내 딴에는 가장 낮은 포복자세로 사뿐사뿐 가보지만 이내 낌새를 알아차리고는 푸드덕하고 모두 날아가 버린다.

개는 인간보다 열 배의 소리감각을 가졌다고 하지만 새도 사람보다 몇 배의 귀가 발달한 모양이다. 오늘의 탐사는 이 정도에서 끝내고 점심을 먹으려고 휴대폰을 꺼내는 순간 있어야 할 휴대폰이 없지 않는가.

더듬더듬 과거로 여행을 해 본다. 차 안에서 통화한 사실이 있다. 그렇다면 산에서 잃어버린 것이다. 날은 저물고 휴대폰이 어디 가겠느냐 싶어 그냥 돌아왔다.

이튿날 어제 탐사했던 코스로 밟아 가며 휴대폰을 날려본다. ‘산다는 게 무어더냐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음악은 흘러나오지만 휴대폰은 눈에 띄지가 않는다.

어둠이 깔려 올 무렵 돌아오는 길에 그렇게 감상적으로 마음을 달래주던 이미자의 ‘삼백 리 한려수도’ 노래 가사도 내 마음을 달래주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휴대폰 생각에 젖어든다. 이 추운 겨울에 외로이 이불도 없이 찬바람에 나둥그려진 휴대폰을 생각하니 가슴이 메여 온다.

휴대폰은 기계제품이고 얼마든지 똑같은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함께 생활한 지 삼년, 날이면 날마다, 아침이면 늦잠 자지 말라고 울어 주었고, 온갖 메시지를 전해 주며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는가. 그런 고마운 나의 애장품인 휴대폰을 잃어버리다니, 차라리 남에게 주어버렸으면 이렇게 슬프지는 않았을 것을….

날이 밝았다. 이대로 포기하고 앞의 것보다 훨씬 기능이 좋고 나를 잘 보살필 수 있는 비서를 두는 것이 어떨까? 숲 속에서 혼자 덩그러니 외롭게 있을 걸 생각하니 이대로 포기할 수가 없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삼일이 지나니 그렇게 흥겹게 울려대던 ‘산다는 게 무어더냐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노랫소리도 이제는 들려오지 않는다.

오전 근무를 마치고 혼자 떠나서 목적지에 도달했다. 예나 다름없이 손대도에는 한 폭의 그림처럼 작은 섬들이 나래지어 있다. 섬을 둘러가는 유람선의 뱃고동 소리와 홍포 해안가의 절경이 잠시 나를 멈추게 한다. 지나갔던 장소부터 꼼꼼하게 챙길 양으로 한두 발걸음 옮겼을 때 나는 나의 눈을 의심했다.

바로 발밑에 내가 그토록 찾던 나의 애장품 휴대폰이 있지 않는가. 물끄러미 한참을 내려다보다 얼른 주워 맺혀 있는 물방울을 닦아낸 뒤 주머니 속에 넣고 나의 따뜻한 손으로 온기를 불어 넣었다. 한참 지나 다시 꺼내어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가슴속에 넘쳐나는 희열을 주체할 수가 없다.

‘그래, 내 새끼야, 이 추운 겨울밤에 얼마나 떨고 있었니? 오늘은 내가 끼고 있는 호주머니 이불로 덮어 줄께. 오늘은 편히 잠들어라 내 아갗

자동차에서 음악을 켠다. 그렇게도 슬프게 들리던 이미자의 ‘삼백 리 한려수도’가 흥겨워서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향했다.

이 휴대폰 사건으로 인해 인간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인간과 자연에 대한 사랑, 그뿐만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물에 대한 사랑도 함께 가져야 한다는 진리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자신과 가족뿐만 아니라 이 지구에 존재하는 아니 우주 전체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다 그 나름대로 역할을 하고 존재存在의 가치를 가짐으로 우리들 생의 존재뿐 아니라 무無의 존재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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