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거제도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또 기후와 물이 좋아 사람살기에도 가장 편한 곳이다. 다만 한 가지. 역사적 유적지나 고찰 등 오래된 문화재가 적다는 아쉬움이 늘 있어왔다.
일종의 문화적 갈등을 느껴오던 차에 근래 거제시에서 오량성, 고현성을 일부나마 보수·복원하고, 폐왕성지 연지를 발굴·복원하는 작업이 시작되는 것을 보면서 만시지탄(晩時之歎)이 있지만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거제의 성곽(城郭)과 성지(城址)를 복원함으로써 일석삼조(一石三鳥)의 성과를 일구자는 제안을 하고자 한다.
지도를 보지 않아도 거제도가 일본 땅과 가장 가까운 곳임은 누구나 안다. 그래서 거제(巨濟)라는 지명이 어울리는데 요즘 사람들은 전방(前方)의 전선(戰線)이 휴전선(DMZ) 혹은 압록강과 두만강쯤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근세이전까지만 해도 거제도가 최전방(最前方)이었다.
왜(倭·일본)와의 관계가 평화로울 때는 거제라는 말 그대로 오고가는 길목의 역할을 했지만 양국의 관계가 소원하거나 사나울 때는 가장 먼저 침략을 당하는 위치에 있으며 맨 앞에서 외침(外侵)의 바람막이 역할을 감당해야 했던 땅이었다.
그래서 거제의 옛 역사 중 상당부분은 倭(일본)에 의한 수난사 혹은 항쟁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임진왜란을 맞아 거제 사람들은 분연히 일어나 의병이 되어 싸웠으며 죽음으로써 이 땅을 수호했다.
활약이 컸던 신응수(辛應壽) 의병장을 비롯한 22인이 난이 평정된 후 선조 38년(1605년) 조정에서 내린 선무원종공신으로 책록된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는 이 나라 어느 지방에서도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많은 수효이니 임란당시 전 거제인들이 얼마나 결사분투 하였으며 큰 공을 세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왜구(倭寇)들의 노략질이 자심하여 그 진상을 임금에게 보고하는 장계가 무려 3,000회 이상 기록되어 있다하니 왜와 가장 가까운 우리 거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을지 상상할 수 있다.
왜구들의 침략에 견디지 못해 여러 차례 피난을 떠났다하며, 심지어 고려말 공민왕 7년인 1358년에는 거제주민(백성) 모두가 진주 근방으로 피난을 가서 46년간 살다왔다 하니 조상들의 그 고초를 어찌 필설로 다 할 수 있으랴.
그런 연유로 거제도에는 성(성터)이 유달리 많다. 거제가 무너지면 나라(본토)가 위태로워진다는 염려 때문에 방어를 위한 축성(築城)의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이다.
동아대 총장이요 박물관장을 지낸 심봉근님은 우리나라에서 단위 면적으로 고찰할 때 성이 가장 많은 곳이 거제도라고 밝힌 바 있다.
거제시지에는 무려 19곳의 성과 성지, 봉수대 6곳, 왜성지 4곳이 소개되어 있지만 우리는 과연 몇 군데나 쉬 꼽을 수 있을까.
거제시지에 기록된 자료들도 성들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턱없이 부족하다. 거제의 역사를 상징하고 또 그것을 생생히 보여주는 성과 성지를 거의 방치해왔던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거제의 성에 관한 자료를 발굴하고 제대로 모아서 후대에 알려주어야 할 의무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뿐 아니라 수집·정리된 자료를 바탕으로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연차적으로 성지들을 하나씩 복원해 나가자.
그럼으로써 우리는 나라를 지키는데 꿋꿋하게 선봉에 섰던 자랑스런 조상들의 정신을 이어가고 잊혀져가던 역사적 교훈을 후대에 남겨줄 뿐 아니라 어느 지역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문화재를 가지게 될 것이다.
또한 복원된 거제의 여러 성들을 차례로 답사하는 것(성지순례·城址巡禮)만으로도 좋은 관광코스가 될 것이므로 멋진 관광 자원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며, 우리 고장의 수려한 풍광과 어우러진 한 차원 높은 미래 관광을 열어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나는 성지복원을 위해 미력이나마 힘을 보탤 각오이며 많은 분들이 이 일에 호응하여 호국·항쟁의 땅 거제를 나타내는 거제의 성들이 하루빨리 복원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성들이 제 모습을 찾아 다시 태어나는 그날은 정녕 거제 정신의 화려하고 벅찬 부활의 날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