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웃이나 친구네 집에 방문했을 때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찍은 가족사진이 유난히 눈이 갔다. 나도 언제 저런 사진을 찍어서 우리 집 벽에 걸어 놓고 볼 수 있을까 생각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첫째 딸이 결혼한 지도 16년이 되었고 둘째 딸이 결혼한 지도 13년이 지나 각 둘씩 아이를 낳아, 손자가 4명이나 되지만 함께 모여 찍은 사진이 없다.
그래서 명절 때에 가족사진 촬영을 하자고 남편에게 말해 보았지만 막내인 아들이 장가들면 며느리와 함께 가족사진을 멋지게 촬영하자는 남편의 의사를 존중하다보니 여러 해가 지나간 셈이다.
지난해 12월에 온 가족과 친지들의 축복 속에 아들의 결혼식을 올렸다. 요즘 사람들 중에는 간혹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고 하지마는 서른일곱이 된 미혼의 아들을 결혼시키기까지 부모의 심정은 항상 긴장과 걱정의 연속이었다.
결혼식장에서 예쁜 며느리와 가족 친지들이 함께 사진을 찍었지만 예식장의 배경 등이 사진관의 분위기와 달라 걸어 둘 만한 사진이 못되었다. 지난 6월 우리 부부 생일이 끼인 주말에 아들과 딸들을 불러 모았다.
모두들 가족사진 찍을 의복을 준비하여 진주 둘째 딸네 집으로 오라고 하였다. 진주는 서울 사는 아들과 거제 사는 큰딸네와 우리 부부가 모일 수 있는 중간 지점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편리하였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마루로 넘어갈 무렵에 우리는 옷을 갈아입고 사진관으로 갔다. 사진사는 작품을 찍는다고 인상을 부드럽게 하라면서 서는 자리와 이미지에 관한 설명을 한참 했다. 사진을 찍고 또 찍고 열 번 넘게 찍었다. 그중에서 제일 잘된 사진을 고른다고 하였다.
시간이 한 시간도 넘었다. 아이들은 배고프다고 빨리 가자고 야단이었다. 예약시간 한 시간을 넘겨 식당에 도착하니 벌써 회와 요리를 차려 놓았다.
이 집은 회도 맛있지만 회를 뜨고 난 뼈와 머리 등 나머지 부분으로 찜을 아주 맛있게 해주는 집으로 둘째 사위와 몇번 가본 적이 있는 진주에서 유명한 횟집이다.
아들, 딸, 사위, 손자까지 우리 가족 12명이 빙 둘러앉아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손자들의 재롱을 보며 ‘부모의 행복이 이런 거구나’하고 느꼈다.
아들이 결혼 전에는 외톨이마냥 가족이 함께 모이는 자리에 빠질 때마다 그 빈자리가 너무 크고 그때마다 나의 마음 한구석이 비어 있었다. 그러나 결혼하고부터 가족의 모임에 참석을 잘하였다.
오늘따라 남편도 사위와 아들이 따라주는 술잔을 자주 비우며 매우 행복해 했다. 자녀들이 다 건강하고 형제끼리 의좋으면 부모의 바랄 바가 또 어디 있겠는가.
부모가 되어 자식들을 앞에 놓고 보니 명절 때마다 우리를 기다리던 아버님 어머님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명절이 되면 깨끗이 집 청소하고 불을 넣어 방을 데우고 음식 장만하고 시간이 지나 길이 막혀 늦으면 대문 앞에 서성이던 부모님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며칠 후에 기다리던 가족사진 액자가 도착하였다. 딸 둘, 사위 둘, 손자 셋, 손녀 한 명, 아들, 며느리, 우리 부부 모두 12명의 얼굴들을 바라보니 부자가 된 것 같다.
거실에 걸어놓고 우리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니 기쁘고 아렸던 추억도 생각난다. 직장생활한다고 잘 거두지 못했어도 바르게 건강하게 잘 자라준 아이들이 고맙다.
제일 앞줄에는 은발의 신사인 남편과 목에 주름이 진 초로初老의 내 모습, 뒤편에는 건장한 남자 3명과 살갑고 다정한 딸 둘과 며느리, 양옆으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 손녀가 서 있다. 벽에 걸어놓고 보고 또 보고 유리를 닦아 본다.
둘만이 사는 거실에 오손도손 따뜻한 김이 나는 것 같다. 튼실한 나무 잘 뻗은 가지에 달린 싱싱한 열매를 보듯 하였다. 아이들아,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믿음과 사랑으로 잘 이기고 견디기 바란다. 철없이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행복한 눈물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