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텃밭
아내의 텃밭
  • 거제신문
  • 승인 2008.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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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경 / 거제수필 회원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본능적으로 엄마의 젖을 빨다가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죽을 때까지 하루 세 끼를 먹어야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습관이라기보다 숙명적 생리작용이다.

요즈음은 아예 밥보다 빵이나 미숫가루 같은 것으로 대용하는가 하면 아예 생식으로 도사(道師)처럼 살아가는 이가 점차 늘어난다고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 육신을 지탱하기 위해 음식을 섭취해야 하는 것만은  불변인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이는 살기 위해 먹느냐, 먹기 위해 사느냐 헷갈릴 때도 있다고 한다. 의식주衣食住 중에 옷가지와 집은 없으면 불편할지라도 당장 목숨과는 직접적 연관이 없지만 식食 즉, 밥은 먹지 않으면 생명을 부지할 수가 없으니 가장 중요하다 할 것이다.

성경에도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는 구절이 있는가 하면 에덴동산에서 하와의 꾐에 빠져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대가로 아담은 죽도록 이마에 땀 흘리며 살아야 하는 벌(?)을 받기도 했다.

이 식(食)을 해결키 위해서는 농사를 지어야 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있어야 한다. 예로부터 집안 집터에 붙어 채전을 하는 밭을 ‘텃밭’이라고 불렀다.

이 텃밭에 참깨, 들깨, 부추, 호박, 배추, 상추, 고추, 오이 등을 조금씩 심고 이것들이 커가는 재미가 아기자기하고 하루가 다르게 잎이 나고 줄기가 나고 열매가 열리는 것을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도 많이 있다.

요즈음은 ‘주말농장’이란 이름으로 주말 되면 소일거리로 이곳에 와서 김도 매고 북을 도우며 오순도순 가족이 함께 공동체 영농을 하며 꿈을 키우고 부부금슬과 사랑을 키우기도 한다.

나의 아내는 어렸을 때 장인이 도시에서 사업을 한 관계로 농사를 모르고 자랐는데 요즘은 이 텃밭에 채소를 가꾸는 것이 너무 좋아서 오히려 신나 하는 것이다. 갓 자란 상추나 쑥갓 등을 밥상에라도 올리면 내가 농사지은 것이라며 자랑이 대단하다.

금년에 유난히도 텃밭에 채소 농사를 지을 복이 있어 후배가 두 고랑을 주고, 이웃사촌이 두 고랑 그리고 아파트 단지 내 공터에 한 고랑을 가꾸는 등 모두 세 곳에 텃밭을 시작했다.

물론 다 합하여 봐도 50평이 안되는 평수이지만 아내의 요즈음 일과는 바쁘고, 기뻐한다. 농장 사장이라도 된 듯 채전밭에만 갔다 오면 기분이 좋아 보인다.

아이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둘이서 살아가는데 밭에서 자라는 싱싱한 채소들에게라도 눈 맞춤을 하고 대화를 하는 모양이다.

우리의 어린 시절에는 공부는 뒷전이고 논에 김매고 논두렁 풀 베고 밭에 곡식 거두고 소 먹이고 꼴 베고 또한 저녁에는 나무장작 베어 팔아 학용품 사는 등의 고된 시골생활의 연속이었다. 말이 학생이지 어린 농사꾼이었다.

해마다 보릿고개를 넘기가 힘든 시절에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어린 시절인 5~60년대에는 지금의 아프리카, 북한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빈곤 그 자체였다.

이러던 중 농업사회가 공업을 주축으로 하는 산업사회가 되면서 소득이 올라가고 지루한 보릿고개가 없어지고 고무신 신던 우리가 운동화를 신고 사는 사회가 된 것이다.

지금은 세계 교역 12위권, OECD에 가입한 나라로서 선진국가와 어깨를 겨루는 잘살고 행복한 나라가 된 것이다.

앨빈 토플러 교수가 말한 제1물결인 농경사회와 제2의 물결인 산업사회를 거쳐 제3물결인 지식정보사회에 도래한 것이다. IT(기술)산업, ST(항공)산업, BT(노동) 산업 등으로 10위권 진입을 기도한다.

이 모든 것은 옛날 우리 조상이 가꾼 텃밭에서 출발했다는 데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텃밭은 우리의 젖줄이요, 생명줄이며, 보고라고 하면 과장된 표현일까? 오늘도 신바람 나게 텃밭으로 가는 아내의 뒷모습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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