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殺人)하지 말지니
살인(殺人)하지 말지니
  • 거제신문
  • 승인 2008.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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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광 칼럼위원

1.
한(漢)의 첫 황제 유방(劉邦)은 항우(項羽)와 연합군을 형성하여 진(秦)을 격파하고 함양(咸陽)에 먼저 입성하여 패왕(覇王)이 된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한고조 유방은 함양에 입성한 후 3개항의 법을 제정하여 지켰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곧 「살인자사 상인자급도저죄(殺人者死 傷人者及盜抵罪)」로 살인한 자는 죽이고 상해를 입히거나 도적은 그에 따른 벌을 받는다는 이른바 법3장(法三章)이다.

단군의 조선에는 본래 범금팔조(犯禁八條)가 있었는데 현재 전하고 있는 것은 세 가지다.

첫째,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고 둘째, 남을 상하게 한 자는 곡물로 보상하고 셋째, 남의 물건을 도둑질하면 그 주인의 노예가 된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문법(成文法)인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Hammurabi)법전의 근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탈리오(talionis)법칙의 적용이다.

고대사회에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원시적 형태의 법이라 하지만 이런 동해보복형(同害報復刑)은 유대인에 있어 최고의 법인 모세의 법에서도 나타난다. 출애굽기 21장에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써 갚을 지니라」고 했다.

2.
1980년대 경기도 화성에서 여성 10명이 살해되는 엽기적인 사건을 비롯하여, 도룡뇽알을 줍겠다고 나간 뒤 실종되어 끝내 유골로 돌아온 속칭 개구리소년 사건은 이미 공소시효가 끝나 범인이 잡혀도 별 볼일 없게 되어 버렸다.

1990년 이후만 해도 부자를 표적으로 다섯 명을 살해하고 사체를 불에 태워 인육도 먹었다는 지존파 사건(1994), 유산을 물러 받기 위해 부모를 살해한 박한상 사건(1994), 열 달 동안 아홉 명을 살해한 정두영 사건(2000), 네 살 여아를 토막 살인한 최인구 사건(2001), 2년간 부녀자 13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정남규 사건(2006) 등 타인에 의해 목숨을 잃은 사건들을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다.

최근에는 한 때 잘나가던 프로야구 선수 출신인 이호성씨가 모녀 일가족 4명을 살해하고 대형가방에 담아 암매장한 범행과 안양 초등학생 유괴 살인 사건으로 전국은 충격에 휩싸였다.

살인한 정모씨는 두 아이들의 집에서 불과 130m 떨어진 곳에 사는 이웃이었다는 점에서 충격이 더 크다.

특이 정씨는 재작년 12월에 실종된 두 명의 노래방 도우미 사건과도 연관성을 배제하지 못하고 있다.

3.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서울 각지를 돌며 부유층 노인이나 출장마사지사 여성 등 21명을 살해한 희대의 살인자 유영철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아직도 멀쩡하게 살아 있다. 1997년 이후 10년간 사형이 집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제민간인권운동단체인 ‘앰네스티’에서 작년 말 우리나라를 「실질적 사형제 폐지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사형폐지운동은 1800년 이후 꾸준히 이어왔다. 영국의 왕 헨리 8세가 통치했던 36년간 7만 2천명이 처형당했고, 이후 18세기 말까지 소매치기 등 사소한 죄를 포함하여 230가지의 죄를 사형으로 다스리고 있었다.

심지어 구두 한 켤레를 훔치거나 가게에서 그림물감 한 세트를 훔친 소년이 사형 당하는 등 사형이 남용되고 인간생명이 경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시작된 운동이다.

4.
그러나 과연 사형제도의 폐지가 옳은 것인가에 대한 존폐논란이 최근에 일고 있다. 물론 국가적 차원에서는 엄연히 사형제도가 살아 있다.

UN의 사형집행 유예 촉구 결의안을 기권한 적이 있으며, 국회에서도 사형제도폐지 법안이 1999년 15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되었지만 아직 법사위원회에서 논의조차 못하고 있다.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국민의식조사에서는 국민의 86.8%가 사형제도의 폐지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실제 사형집형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죽인 자의 인권은 존중되어야 하고, 죽은 자의 인권은 무시해도 되는 건가? 아무 이유 없이 정말 아무 이유 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원혼은 무엇으로 달래야 하는가? 억울한 죽음일 뿐이다.

지금으로서는 정부가 안양 초등학생 살해사건처럼 13세 미만의 아동을 성폭행한 뒤 살해한 범죄자에 대해선 사형이나 무기징역에 처하도록 관련 법령을 바꾸기로 하고 이 법을 숨진 혜진·예슬양의 이름을 따서 가칭 ‘혜진·예슬법’이란 이름으로 이를 추진한다고 하는데 사형의 허와 실 그걸 한번 따져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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