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주인을 물다
개가 주인을 물다
  • 윤일광 칼럼위원
  • 승인 2020.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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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4월 영국에서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집안에서 소란을 피운다는 이유로 스튜어트 스메일(19)군이 기르던 개를 물었다. 개는 동네 가축병원에 입원해 붕대를 감고 누워 있는 사진까지 공개됐다. 영국 지방법원은 스메일군에게 1년 동안 개 사육금지와 개 치료비 23파운드를 부담하라고 명령했다고 해외화제로 전한다. 개가 사람을 무는 일은 뉴스거리가 못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었다면 국제적 뉴스거리다.

고려 최자의 '보한집'에 충성스런 개 이야기가 나온다. 거령현에 살았던 김개인(金蓋仁)이 동네잔치를 다녀오다가 술에 취해 풀밭에 잠이 들었는데 들불이 일어났다. 따라갔던 개가 근처 개울물에 몸을 적신 다음 불 위를 뒹굴며 불을 끄고는 죽었다. 김개인은 이를 알고 몹시 슬퍼하며 개를 묻어주고 지팡이를 꽂았는데 자라서 커다란 나무가 됐다. 훗날 이 고장 이름을 '개 오(獒)'자와 '나무 수(樹)'를 쓰서 '오수(獒樹)'라 불렀다. 이런 충견 또는 의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는 억울하다. 우리말 접두어에 '개'자가 붙으면 대개 부정적 용어로 쓰이기 때문이다. 개만도 못한 인간이 천지면서 왜 다른 동물도 아닌 개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개의 입장에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사장과 전무가 함께하는 직원들의 술자리가 있었다. 평소 사장의 회사경영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한 사원이 한마디 했다. "전무님, 사장님 좀 잘 모셔요. 전무가 제 역할을 못하니까 사장님이 개새끼 소리를 듣잖아요." 전무에게 말을 걸지만 사장한테 하는 말이다. 이를 간접화 어법이라 한다.

여당의 최고위원에 출마한 어느 인사가 검찰총장을 겨냥해서 '개가 주인을 무는 꼴'이라고 했다. 이 말에 어느 분이 논평하기를 "개가 주인을 무는 경우는 주인이 도둑처럼 보였거나, 아니면 주인이 자기를 너무 괴롭혔기 때문이다"고 했다. 그런데 '개가 주인을 무는 꼴'이라는 말이 '주인이 개를 무는 꼴'로 들리는 까닭은 어쩐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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