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약을 생활처럼 달고 사는 아내가 환절기를 타는 탓인지 우울해 보인다. 갑상선이 도져서 더욱 위축된 듯하다. 나는 이럴 때 뭔가의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본능적으로 느겼다.
“매물도가 좋던데 같이 안 갈래?”
거절당해도 손해 볼일 없는 질문을 불쑥 던졌다. 평소 같으면 돈 든다고 싫다고 할 아내가 말이 없다. 말이 없는 것은 오케이라는 것을 나는 당연히 안다.
예전엔 그림으로만 보았던 소매물도 등대섬의 아름다운 풍경을 며칠 전 국립대학교 총장이셨던 선배님과 어설픈 상식으로 소매물도에 갔다가 등대섬에 오르지 못해 실패한 경험을 만회하고, 내가 보았던 너무나 황홀한 그 장면을 다시 보고자 내심 생각하고 있었으면서 오로지 아내를 위한 여행인 양 거제시의 가장 남쪽인 남부면 저구로 향했다.
여행이란 떠날 때 설레이는 즐거움과 갔다 오고 나서의 여운이 잘 겹쳐져야 좋은 것이다. 며칠 전에는 등대섬에 들어가려면 여객선을 타고 가서는 안 되고 사선私船을 대절해서 가야 한다는 모두의 생각에 비싼 돈으로 낚싯배를 빌려 타고 갔었다.
등대섬 인근에 도착하여 카메라와 짐을 챙기며 상륙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선장은 “등대섬 상륙은 불가능합니다. 전엔 가능했지만 지금은 고발이 많아서 안 되고 배로 둘러보면 더 좋습니다.”라는 황당한 말을 냉정히 선언하여 등대섬의 상륙에 실패하고 배신당한 쓴맛을 다셔야 했다.
그러나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은 등대섬으로 가는 도중에 기막힌 절경의 섬을 본 것이었다. 평소에 수석으로 자연 경관을 익힌 탓도 있지만, 사진 촬영을 좋아해서 웬만한 경치를 소홀이 하지 않는 나는 네 개의 섬인지 다섯 개의 섬인지 모르지만 한 개로 뭉쳐서 나타난 그 섬이 너무 아름다웠다.
이제 그 등대섬의 상륙과 기막힌 절경의 섬을 아내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뱃전에서 디지털 카메라의 여러 기능을 확인하고 아름다운 그 섬을 카메라에 담아서 컴퓨터에 옮겨 맘껏 보리라는 생각으로 눈을 돌린 순간, 며칠 전의 그 섬이 아니었다.
며칠 전에는 분명 소복단장한 여자처럼 한 개의 섬이었는데, 지금 나타나는 네 개의 섬은 아니다. 아름다움을 아무리 찾아보려 해도 없다. ‘왜 그럴까, 잘못 본 것일까! 너무 떨어져 아니, 너무 가까워서 그런갉…,’ 안타깝다.
며칠 전의 아름다움을 큰일이 난 듯이 아내에게 자랑했던 나는 아내의 표정을 훔쳐보니 ‘섬사람이 그 정도의 섬을 보고 호들갑을 떨고 있소!’하는 듯 심드렁하다. 소매물도에 내려 등대섬으로 가기 위해 능선을 올라가는 길이 너무 붐벼 아내의 손을 잡았다.
야위고 힘없어 보이던 아내는 고개계단을 쉽게 오르고 있었지만, 건강하다는 나는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폐교된 학교를 뒤로하고 섬의 능선을 질러 좁은 길에서 내려다본 왼편의 바다는 너무 조용했다.
이웃한 대매물도가 조용한 호수 항아리에 잠긴 듯이 건너다 보였고 백두산 천지에서 솟아오른다는 괴물이 이곳에서 솟구쳐 오를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땀을 뻘뻘 흘리고 한 참 내려가던 중, 혼연히 제 모습을 드러낸 등대섬의 아름다움에 저절로 감탄의 소리가 나왔다. 별로라 생각했던 아내도 표정이 티 없이 밝아졌다.
바닷물이 조금 빠지자 성급한 젊은이는 바지를 둥둥 말아 올리고, 한 손은 등산화, 한 손은 연인의 손을 잡고 건너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아무 말 없이 눈으로 결정했다.
‘조금 더 기다리지 뭐….’
모세의 기적을 딛고 건너간 등대는 아득한 절벽과 먼 바다에 가슴을 내맡기고 몸과 등은 자식에게 맡기는 희생적인 우리나라의 어머니 같았다.
그러나 기대만큼은 아니다. 가파른 언덕을 땀 흘리고 내려오면서 쳐다본 등대섬은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되었다.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없는 것 같다. 돌아올 배를 기다리면서 상점 의자에 앉아 앞바다를 쳐다보았다. 나에게 그렇게 아름답게 느껴졌던 그 섬이 아무런 꾸밈없이 다가왔다.
아, 저 섬이 배를 타고 오면서 보았던 그 섬이구나. 물이 들면 네 개의 섬으로 되었다가, 물이 나가면 다섯 개의 섬으로 된다는 섬.
맨살이 확연히 드러난 바위섬은 이 동네 사람들이 오랫동안 살면서 징글나게 보고 지내던 섬이었다. 파도가 쳐도 잔잔해도 특별한 감정을 나타내지 않고 서 있는 바위섬처럼, 그리고 이곳 주민처럼 살았듯….
특별히 잘난 얼굴도 아니고 못난 얼굴도 아닌 마누라와 어언간 40년이 되지만, 어느 방향 어느 시기에도 큰 변함이 없는 아내의 얼굴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아내의 손을 다시 한 번 꼭 쥐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