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매번 각종 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왠지 개운치 못하고 입맛이 씁쓸해지는 것을 어찌하랴. 이번에도 변함없이 ‘지역당(地域黨)’이 판을 쳤으니 말이다.
영남지역에서 ‘영남당’이 64명(94%), 호남지역에서 ‘호남당’이 31명(100%), 충청지역에서 ‘충청당’이 14명(58%)으로 지역주의(regionalism)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지 않은가.
이 중에는 무소속이 각각 몇 명씩 포함되어 있다고 하나, 닭이 꿩알을 품어 부화를 시켜놔도 ‘꿩 새끼 제 길 따라간다’고 모두 지역당에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각기 지역 당에 포함시키지 않을 수 없지 않겠는가.
심지어 이번에는 호남에는 ‘호남당’, 영남에는 ‘박근혜당’, 수도권에는 ‘이명박당’, 충청지방에는 ‘충청당’ 등으로 신(新)지역주의가 생겨났다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으니, 정치인들이 입만 열면 지역주의를 극복하겠다고 구두선(口頭禪)처럼 외우고 있지만 현실은 지역주의가 더 심화되고 있으니 개탄하지 않을 수 없는 실장이다.
이 지역주의가 혹자는 정치인들이 충동질하여 생겨났다고 하는데, 그들이 꼬드겨서 만들어낸 지역감정은 이제는 지역정서로 정착한 느낌마저 들어서 정치 현실에 심각한 암적 존재로 굳어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 심히 우려되는 바이다.
정치는 보수(保守)도 있어야 하고 진보(進步)도 있어서, 서로 견제와 타협 그리고 나라를 위한 대국적 견지에서는 서로 협조하는 조화를 이루어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날에 극우적(極右的) 보수주의의 단점만 뼈저리게 겪었고 거기에 반발한 소위 민주세력들에 의하여 극좌적(極左的) 진보주의의 미숙한 정치로 초래된 민생고를 겪으면서, 이제는 지역주의도 극우와 극좌로 양극화되어 서로가 중도(中道)를 찾아 화합할 수 있는 여지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그 병이 깊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매우 걱정스럽고 안타깝다.
어느 선진국인들 다소의 지역주의가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누구는 어느 지역에서 유리하고 누구는 어느 지역에서 불리하다는 말은 익히 들어온 바이나 우리의 경우처럼 이렇게 심각하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가 겪고 있는 지역주의 폐단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속된 말로 어느 지역에는 그 지역이 선호하는 당의 공천만 받으면 부지깽이를 후보로 세워놔도 당선된다는 웃지 못할 현실이니 지역주의가 성행하는 지역의 각종 선출직들은 선출직이 아니라 특정 정당의 임명직으로 전락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선출된 자들은 지역이나 민생을 위한 정책개발에 힘쓰기 보다 당의 중앙에 눈치보기가 일쑤이고, 주민들의 허울 좋은 민주주권은 특정 당에 반납 내지 증발되고 마는 결과가 되고 마는 것이다.
또한 크나큰 부작용으로서는 공천만 받으면 자리는 떼어 놓은 당상인 격이 되니 지금도 항간에 떠도는 소문처럼 당비(黨費)라는 명목으로 검은 돈이 오가는 공천비리가 활개를 치게 되고, 돈으로 정치를 하려드니 올바른 인물은 정치에 혐오를 느껴 정계에 진출하려 하지 않고 졸부(拙夫)들만이 판을 칠 수도 있지 않겠는가(그렇지 않은 분들은 용서해주기 바란다).
이번 총선의 투표비율이 46%선으로 저조했다고 한다. 그 원인이 여러 가지 있을 수 있겠으나, 그 중 두드러진 이유로는 내 하나 투표에 빠져도 될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는데 굳이 나 하나 빠진다고 어떠리 하는 정치무관심(political apathy)을 조장하는 부작용도 생겨나게 되는 것일 게다.
우리의 민주주의 제도는 선진국처럼 아래로부터 피나는 노력으로 쟁취한 풀뿌리 민주주의(grass-roots democracy)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해방 이후에 미국식 민주주의를 이 땅에 들여와서 위로부터 덮어씌운 것이기 때문에 가뜩이나 진정한 민주주의 뿌리가 내리지 못하여 올바른 민주주의다운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올바른 민주주의를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들이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정치 장단에 놀아날 것이 아니라 투철한 민주시민의 의식으로 무장하여 우리의 진정한 주권을 찾아 행동하는 나라의 주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는 한 이 땅에 참다운 민주주의로의 길은 멀어질 뿐 아니라,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길도 요원하다는 인식을 깊이 되새겨야 할 것이다.
‘잔인한 4월에 한국의 민주주의는 꽃망울도 터뜨리지 못한 채 이렇게 떨어져 가는가. 아! 이 땅에 ‘민주주의의 꽃’은 언제나 활짝 피려나.’
이번 총선을 보고 느낀 감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