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덕예찬(屯德禮讚)
둔덕예찬(屯德禮讚)
  • 거제신문
  • 승인 2008.05.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수원 칼럼위원

며칠 전 출장으로 거제도를 찾은 손님이 자투리 시간이 있어, 거제도를 구경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최근에 개원한 산방산 비원(秘苑)으로 안내했다.

아직은 홍보부족이라 많은 손님이 오지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특색이 있으니 앞으로 괜찮아 질 것이라고 하는 주인에게서 그간의 여러 노고에 대해 들을 기회를 가졌다.

남이 돌보지 않던 버려진 산자락의 다락논을 이렇게 바꾼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0년 이상을 이 버려진 땅과 씨름하면서 흙을 다듬고 나무를 심는 동안 주변에서는 말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세월은 그 땅을 아름다운 원림으로 바꿔놓았다.

외도가 서양정원의 형식을 딴 것이라면, 산방산 비원은 한국정원의 기본 틀에, 비원이라는 이름자체도 그러하지만 가지치기를 통해 모양을 잡거나 화분에 담긴 분재목을 보면 약간의 일본풍의 냄새가 나는 그런 정원이다.

그렇지만 전통의 일본정원이 자연을 축약하여 안뜰에 가둬버린 점과 비교하면 비원은 확 트인 공간 때문에 오히려 차경(借景)의 원리를 충실히 반영한 한국정원이다.

고개를 들어 뒤를 보면 산방산의 육중한 기암괴석이 한 눈에 들어오고 산자락이 감싸듯 이곳을 안고 있다. 눈을 들어 앞을 내다보면 멀리 물을 가득담은 한산도가 보인다. 갖가지의 기화요초와 시원스레 내뿜는 분수의 물줄기가 시원함을 더한다.

한국전통정원에는 역류하는 물보다는 낙차를 이용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폭포나 계곡으로 물을 자연스레 정원으로 끌어 들이는 것이 일반적임에도 시원스레 내뿜는 분수는 이곳을 더욱 쾌적하게 보이도록 한다.

이것은 아마도 풍수 지리적으로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명당이라는 지형이 주는 평온함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노란 아이리스 꽃이 한창이고, 꽃잔디가 비단처럼 깔려있다. 간간이 부는 늦봄의 바람이 싱그럽다.
차 한 잔을 대접받고 인근의 청마 유치환선생의 기념관을 둘러보았다.

청마선생의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기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유명한 작품들도 소개되어 있다.

‘바위’나 ‘깃발’같은 시 뿐 만아니라, 문인인 이 영 도여사와의 사적인 관계를 짐작케하는 글들도 있어 청마선생의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어 재미가 예사롭지 않다.

특히 헤드폰을 끼고 들을 수 있는 낭송시와 화면을 통해 보는 시원한 풍광은 품격높은 문화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담 하나를 이웃에 두고 있는 선생의 복원된 생가와 이 마을의 모든 역사를 내려다보고 있음직한 정자나무가 마치 청마선생을 지키기라도 하려는 듯 기념관 한 쪽에 서 있다.

담양에 답사를 갈 때마다 송강정, 면앙정, 식영정, 환벽당을 돌아 가사문학관에 다다르면 그 문학적 정서에 압도되어 부러워했는데, 이제 청마기념관을 보면서 우리 거제도 참 많이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 년에 한 두 차례 오르는 폐왕성에서 역사속의 고려 의종의 비극과, 정치와 권력의 무상을 느꼈다면, 청마 기념관에서는 잊혀졌던 추억에 대한 솟구치는 그리움으로 가슴 뭉클한 감동이 있다.

등산로를 따라 산방산정산에 오르면 한산도, 추봉도, 통영 등 인근의 섬과 도시를 볼 수 있고, 넘실거리는 벽파수도를 볼 수 있어 좋다.

장대한 산방산의 남성적인 매력도 아름답지만, 이 산을 끼고 도는 둔덕천과 때 묻지 않은 나무와 바람 또한 놓치기 아까운 경관이다.

둔덕은 이처럼 거제도의 품격을 높이는 곳이다.

둔덕은 필자가 존경하는 B형과 O, K형의 고향이기도 하고 문인인 B선생의 소재가 된 곳이기도 하여 좋지만, 옥포나 고현의 네온불의 화려함이나 소란스러움, 그리고 밤이면 먹고 마시는 질탕한 상업도시의 그 혼란스러움을 씻어낼 전원과 농촌 그리고 문학과 역사를 볼 수 있어서 더욱 좋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