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장단점을 말하지 않는다는 「불언장단(不言長短)」의 예화로 조선 세종조의 명재상인 황희(黃喜) 정승의 소 이야기를 든다. 공이 벼슬하기 전에 길을 가다 쉬면서 보니 어떤 농부가 두 마리로 밭을 갈고 있었다.
심심하던 차에 말이나 붙이고 싶어 「저 두 마리 소 중에 어느 소가 더 나은가?」하고 큰소리로 묻자 농부가 일을 하다말고 뛰어와 공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검은 소가 일을 더 잘합니다.」라고 말한다.
공이 괴이하게 여기자 농부의 말이 「비록 가축이지만 그 마음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요. 잘한다하면 우쭐거릴 것이고, 못한다하면 속상해할 게 뻔하지 않습니까?」 이 일이 있고 난후 공은 어떤 일에도 맞대놓고 상대의 장단점을 말하는 법이 없었다 한다.
소는 힘이 세고 고집이 있으나 순하고 듬직하여 오래전부터 사람과 가장 친숙한 동물로 여겨왔다. 따라서 십이지(十二支)의 두 번째가 「축(丑)」이며, 윷놀이의 윷이 바로 소를 지칭하고 있다. 남여 사랑의 표상인 견우(牽牛)와 직녀(織女)의 설정에서도 견우는 소를 끄는 사람을 뜻한다.
농경위주의 사회에서 소는 매우 중요한 가축이다. 농사뿐 아니라 재산으로서도 큰 의미를 가진다. 6-70년대 농촌에서 자식을 대학에 보내려면 소를 키워 목돈을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학을 일컬어 우골탑(牛骨塔)이라는 별칭이 생기기도 했다. 이는 동양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소를 「Cattle」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라틴어 「caput」가 어원이며 곧 「움직이는 재산(動産)」을 뜻한다. 따라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소를 훔치는 자는 매우 엄하게 벌을 받았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의 전제로 수입이 중단되었던 쇠고기 시장 개방을 앞두고 국민적 반발이 드세다. 폭락한 소값 때문에 농민은 죽을 지경인데 그 대책보다는 광우병 타령뿐이다.
정부는 최종 소비처인 음식점까지 원산지 표시제를 강화하면 한우도 경쟁력이 있다고 하지만 늘 못 믿을 게 정부정책이라 그게 더 안타깝다.(san109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