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방송되고 있는 TV 드라마중에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있다. '슬기롭다'라는 말과 의사생활이라는 단어의 조합이 부자연스럽기는 하지만 전편인 '슬기로운 감방생활'의 후속편이다 보니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신경외과·흉부외과·소아외과·산부인과 네명의 의사들은 어려운 수술들을 단 한명의 실패 없이 척척 해내는 뛰어난 의술을 가지고 있다. 출중한 외모뿐만 아니라 훌륭한 성품을 가지고 있어서 환자를 위해 기다려주고 같이 울어주고 늘 이해를 해준다.
휴가도 없이 하루도 쉬지 않고 24시간 일을 하면서도 환자를 위해서는 불평 한마디 없으며 일을 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음악밴드를 결성해 연주도 한다. 나는 이런 의사를 실제로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다. 물론 어딘가에는 이런 훌륭한 선생님이 계시겠지만.
드라마에는 또 다양한 질병들로 고생하는 많은 환자들이 나온다. 수술이 잘돼 완쾌돼서 나가는 환자도 있는 반면에 치료중에 사망하는 환자의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의사에게 원망 섞인 하소연을 하는 일은 없다.
지난 회에서는 의대를 막 졸업하고 의사가 된 인턴의 실수담이 방영됐다. 입으로 먹지 못하는 환자에게 소위 '콧줄'이라는 관을 코를 통해 삽입하게 되는데 이것이 막혀 콧줄을 교체하는 장면이었다. 새로운 줄을 삽입하면 막힌 줄은 제거를 하는 게 당연한데 인턴이 실수로 콧줄 두 개를 양쪽 코에 넣은 채로 하루를 보내게 되는 장면이었다.
만약 병원에서 이런 일이 실제로 발생하면 인턴은 상급자에게 많이 혼나고 환자도 불만을 심하게 토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는 환자가 오히려 처음이면 그럴 수도 있다고 시술한 초년병 의사를 이해하고 웃고 넘어간다. '슬기로운' 환자가 아닐 수 없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의과대학에 입학하면서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나오는 주인공 의사들과 같은 '의사상'을 꿈꾸며 의술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그런데 수많은 제약과 한계로 인해 그러한 희망과 포부는 점점 색이 바래지면서 이상적인 의사의 이미지에서 조금씩 멀어지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소아외과 전문의가 올해는 단 한명도 지원하지 않았다는 신문기사를 접하니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이것을 의사들의 개인적인 이기심으로만 여기는 기사의 논조를 대할 때면 더욱 안타깝다. 거제에도 분만을 하는 병원과 산부인과 의사가 점점 줄고 있다. 신생아가 줄은 탓도 있겠지만 필수 의료인력에 해당하는 분만전담 산부인과 의사의 감소는 거제도에서 젊은층의 이탈을 가속화시키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아기의 유산 소식을 전해들은 산모는 계속 울었다. 드라마 속 산부인과 의사는 오랫동안 운 산모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줬다. 그로 인해 자기 차례가 한참 지나도록 기다려야 했던 수십명의 환자들도 진료가 늦어짐을 불평하는 사람 하나 없이 산모의 울음소리를 모두 듣고 있었다.
'슬기로운' 아니 '이상적인' 의료현장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면이 드라마 속에서나 있을법한 일이긴 해도 이것을 보는 일반 국민들뿐만 아니라 의사들도 '저런 말도 안되는 장면이 어딨어?'라고 얘기는 할 수 있을지언정 가슴속으로는 무언가 따뜻함을 느낀다.
의사들이 배우고 체험하는 의료의 본질이 환자에 대한 사랑을 밑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들과 검사들도 법조인이 나오는 TV드라마를 말도 안되는 얘기로 치부하며 보지 않는다고 한다. 대부분의 의사들도 의학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고 한다. 현실과 많이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겉으로는 비아냥거리지만 이 드라마를 보고 있다. '슬기로운' 의사는 될 수 없지만 그래도 보면서 따뜻해지는 마음을 느끼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