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의 꿈
소록도의 꿈
  • 거제신문
  • 승인 2008.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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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 거제수필문학회 회원

어린 사슴처럼 생겼다 하여 소록도라 하였다던가.

문학기행의 행선지가 소록도로 정하여 졌다. 소록도는 누구나가 다 알고 있겠지만, 한센병(나병) 환자를 수용하고 있는 국립 소록도 병원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고흥반도의 끝자락인 녹동항에서 1㎞도 채 안 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깨끗한 자연환경과 해안 절경, 역사적 기념물로 인해 현재는 고흥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한다.

고흥반도를 가로질러 녹동항 부둣가에 서니 600여미터 전방에 조용하고 아름다운 섬 소록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름 그대로 순하고 착한 작은 사슴 같다.

15분 간격으로 운항하는 선박을 타고 배에서 내리니 울창한 송림과 백사장이 잘 어우러진 해수욕장이 보인다. 이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에 과거 한센병 환자들의 수많은 애환과 사연이 서려 있다 하니 마음이 찡해져 온다.

일행들과 함께 담소하며 잘 다듬어진 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니 단일 공원으로서는 국내 최대인 중앙공원이 나타난다. 6천여평 넓이의 공원에는 금물이 든 듯한 황금편백과 실편백, 히말라야 시다 등 쉽게 볼 수 없는 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이 모든 것이 70년 전 쇠약한 병자들을 강제로 동원시켜 3년6개월여동안 만든 결과물이라 하니….

중앙공원에서의 최고 볼거리는 구라탑 뒤쪽 언덕에 놓인 <메도 죽고 놔도 죽는 바위>라 한다. 이불 한 장 크기의 이 바위는 완도에서 공수해 왔는데, 이 바위를 떼매올 때 허리가 부러져 죽은 이와 매 맞아 죽은 이 등, 죽은 이들이 숱하여서 이름 붙여진 한스런 바위라 한다.

바위 위에는 한하운의 詩 「보리피리」가 새겨져 있다. 천형이라 하여 일생을 암담하게 살다간 시인의 인생에 대한 향수와 삶의 인고가 절실하게 느껴져 온다.

시인을 생각하며 조금 더 있고 싶었으나 정해진 시간 내에 움직여야 하므로 전시실로 이동하였다. 전시실은 그 당시에 환자들이 생활하였던 여러 가지 생활 도구 등과 사진들을 모아놓은 곳이다. 가난했던 나라에서 천대받던 이들의 참상이 그대로 보이는 듯해 한순간 숙연해 졌다.

특히 가슴 아팠던 것은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환자들과 가족이 상봉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었다. 철조망 한쪽에는 부모들이, 반대편에는 머리를 깎은 어린아이들이 일렬로 줄을 서 있는 장면이었는데, 우리는 “아!…” 소리 외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안타까운 마음 그대로 놓아두고 다른 곳으로 향하였다. 돌아서 나오는데 누군가 벽면을 가리켰다. 올려다보니 색이 바랜 낡은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 당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지도 체제에 반발했다 하여, 강제로 거세당한 이름 모를 남자의 가슴 적시는 시詩가 붙어 있었다. 버려진 섬에서 이들이 당했을 고통과 인권유린이 어떠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개방은 공원까지였으며 그 이상은 한센인들의 거주지여서 관람이 불가하였다. 흩어져 있던 일행이 한자리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보리피리」가 새겨진 바위였다. 그들에게는 한恨의 이 바위가 후세의 관광객들에게는 기념의 장소가 되다니.

그러나 그 애환들을 모두 다 딛고 이제 이곳에는 약 900여 명의 환자들이 남아 그들만의 사랑과 희망을 가꾸고 있다 한다. 아무도 그들과 만나지 못하고 어떠한 이야기도 그들과 할 수 없었지만 말하지 않아도 그들의 소망을 알 것 같았다.

돌아가기 위해 다시 배를 탔다. 이곳에 올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배의 난간에 섰다. 눈앞의 하늘과 바다 소록도는 모두 아름다웠다. 푸른 바다 위로 번지는 하얀 물길은 저 먼 곳으로 가 보고 싶어 하는 한센인들의 오래되고 간절한 소망 같았다.

그들이 꿈과 사랑을 잃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멀어지는 섬에게 작별의 인사를 했다. 이 생에서의 시련과 고난을 이제 모두 다 잊고 다음 생에서는 자유로운 삶을 마음껏 살아가기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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