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老人)학대
노인(老人)학대
  • 거제신문
  • 승인 2008.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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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때 모량리(牟梁里)에 살았던 손순(孫順)은 집이 가난했다.

노모가 계셨는데 아이가 할머니의 잡수시는 것을 뺐는지라. 순이 아내와 더불어 「아이는 또 얻을 수 있다.」하고 마침내 아이를 업고 취산(醉山) 북쪽 기슭으로 가서 묻으려고 땅을 팠더니 거기서 석종(石鐘)이 나왔다. 임금이 이 사실을 알고 순을 효자라 칭하고 집 한 채와 해마다 쌀 50석을 주셨다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 분이 바로 손씨 시조 문효공(文孝公) 순이시다.

유난히 효자와 효부가 많았던 역사적 사실에 반하게 고려장(高麗葬)이라는 풍습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하는 문제가 논란이 된다. 고구려 때 노쇠한 사람을 묘실에 옮겨 두었다가 죽으면 봉토를 쌓아 안치 했다는 것과, 고려 태조 8년에 치매나 전염병이 있는 노부모를 산 속에 버려도 된다는 기록이 바로 고려장이라고 주장할 뿐 직접적으로 고려장이 언급된 내용은 없다.

고려장은 일제가 조선정신 말살을 위한 날조된 역사의식이라고 보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당시 병든 부모로 인한 감염의 확산을 막기 위해 외사(外舍)에 격리한 흔적이나 풍장(風葬)이 외국인의 시각으로 왜곡된 것이며, 특히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동화집에 「부모를 버린 사내」라는 고려장 이야기가 확대 재생산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고려장과 관련된 전래동화는 우리 동화가 아니다. 고려장과 지게 이야기의 출처는 불교설화집 잡보장경 (雜寶藏經) 기로국조(棄老國條)에 있고, 중국이 어려운 문제를 내었을 때 고려장 하지 않고 집에 숨겨 두었던 늙은 아버지가 답을 가르쳐 주었다는 이야기는 중국 효자전(孝子傳)에 나온다.

수년전 회자되었던 제주도 효도관광에서의 노부모 유기 괴담이 아직 귀에 선한데, 엊그제 신문에 노인학대의 약 90%가 가정에서 발생하며, 가해자의 절반 이상은 아들이고, 그 다음이 며느리라니 세상 이래도 되는지 씁쓸하기 그지없다. (san10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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