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여심
가을 여심
  • 거제신문
  • 승인 2008.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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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숙/거제수필문학회 회원

가을을 남자의 계절이라고 한 말이 밉게 느껴집니다. 실눈이 되어 바라보는 햇살에 비친 코스모스는 아름답고, 길가에 아무렇게나 핀 구절초 꽃잎에 코를 대보며 가을 냄새를 느낍니다.

불같이 타오르는 화려한 단풍은 제쳐놓는다 하더라도, 옷장의 추동복들을 꺼내어 정리하는 손길에는 벌써 어디론가 끝없이 떠나고 싶은 마음이 묻어 있습니다.

내가 보낸 가을보다도 앞으로 맞이해야 될 가을이 많을 것 같은, 중년이 덜 된 나이에 세월을 말하는 게 우습게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 가을에 우수에 젖어보지 않으면 일 년이 너무나 허망하게 끝날 것입니다.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어울릴 듯한 코트를 꺼내며 동해안의 끝없는 바닷바람을 생각해 내고, 파카를 만지며 낙엽이 구르는 조용한 계곡길을 떠올립니다.

주위에는 꽃축제나 단풍놀이를 다녀온 사람, 또 떠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 가을에 나는 무기력증에 빠진 듯, 도대체 여러 사람들 속에 따라 나서지 못하고 서성대고 있습니다.

이제 설악의 단풍은 끝났을 것이고, 내장산의 단풍이 절정일 것입니다. 우리 거제에도 화려하진 않지만, 단풍이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 화려한 계절이 끝나면 빨간 법의法衣를 벗고 서 있을 나목이 맨몸으로 겨울을 맞이할 것입니다.

나는 그때를 기다립니다. 싸아한 바람이 옷깃을 스치며 오는 그 겨울의 모습을 기다립니다. 가장 원초적이고, 확실한 계절인 겨울의 초입에서 누구도 없이 떠났다 돌아올 생각입니다.

낙엽들을 실컷 밟고, 겨울의 바닷바람을 한없이 맞을 생각입니다. 찬란한 봄을 잉태하고 있는 겨울을 축하하고 싶습니다. 돌아올 때는 겨울의 냉엄한 생기가 몸에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가을에 감사하고, 계절에 감사해 할 것입니다. 순수함의 끝을 다녀온 나는 더욱더 힘차게 일상을 꾸려 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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