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군 화개면 정금리에 있는 경남도 지정기념물 264호 「천년 차나무」가 7월 1일부터 한국기록원 공인 국내에서 제일 오래된(最古) 차나무로 그리고 하동 화개를 우리나라 최초의 차 시배지(始培地)로 인증 받았다. 천년 차나무 잎은 나무의 가치와 희소성, 차의 품질 등으로 100g 가격이 1300만원이라니 놀랍다.
삼국사기에 「흥덕왕 3년(828년) 당나라에서 돌아온 사신 대렴(金大廉)이 차종자를 가지고 와 지리산에 심었다.」는 기록이 시배지 선정의 근거가 된다. 그러나 가야문화를 인정하게 되면 차의 역사는 약800년쯤 길어진다. 아유타국의 허황옥이 올 때 예물에 차씨가 들어 있었고, 지금 김해는 장군차라는 이름으로 재배하고 있다.
고려는 불교발전과 더불어 차의 전성기였다. 국가의식 때 임금께 차를 먼저 올리는「진차의례(進茶儀禮)」, 궁정에는 다방(茶房)이라는 차 전담 관청까지 있었다.
조선은 차문화가 많이 쇠퇴했지만 차공(茶貢)은 계속되었고, 사헌부 관헌이 일정시간 모여 차를 마시는 다시(茶時)를 비롯해, 실록에 차세(茶稅) 징수기록도 있었으니 차는 끊임없는 기호음료였다. 그러다가 다산(茶山)에 의해 중흥되고 추사(秋史)와 초의(艸衣禪師)에 의해 널리 퍼지게 된다.
일제강점기 때 총독부는 차 산업을 장려하여 1912년 광주에 무등다원, 1940년 보성다원을 조성했으며, 차가 기업화된 것은 1970년 무렵부터다. 차의 현대화에 기여한 사람은 사천 다솔사(多率寺)에 적을 두었던 효당(曉堂) 최범술(崔凡述 1904∼1979)로 엄격한 다법(茶法)을 통해 차생활을 실천하기로 유명하다.
차는 씨앗으로 번식하는 직근성 식물로 옮겨 심으면 잘 살지 않는다는 습성 때문에 예전에 여자가 시집갈 때 정절의 상징으로 차씨를 혼수에 담아가기도 했다.
우리나라 차의 제다법(製茶法)은 뜨겁게 달군 가마솥에 차를 덖은 다음 손으로 비기고 또 덖기를 반복하게 된다. 가장 최상품 차는 곡우(穀雨) 전후에 딴 세작(細雀)이며, 차생활은 훌륭한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이어져 나가야 할 것이다. (san109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