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에서부터
작은 것에서부터
  • 거제신문
  • 승인 2008.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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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옥/거제수필문학회원

얼마 전 타 도시에서 개최되는 백일장에 갔었다. 이름 있고 권위 있는 백일장의 하나로 딸이 예심을 통과를 하여 참여하게 되었던 것이다. 새벽 일찍 일어나 설레는 마음으로 갔었다.

백일장 장소는 바다가 보이는 아담한 공원이었다. 그 행사에는 책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었던 시인이 심사위원으로 오셨고 전국에서 예심을 통과한 고교생 스무 명과 당일 백일장 참가자까지 합쳐 백여 명이나 되었다.

수상을 하게 되면 문예부 장관상이 주어지는데, 국어국문학과와 문예창작과 지망 학생에겐 가산점과 특차 기회까지 주어지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다들 주어진 시제 아래 뿔뿔이 흩어져 시상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공원을 산책하였다. 그런데, 차마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여기저기서 인솔해 온 교사가 학생들 옆에 서서 첨삭을 해주고 있는 게 아닌가.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에 학생 5~6명에 인솔 교사 두 사람이 한자까지 첨삭을 해주는 곳으로 가서 한마디 했다. 도저히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선생님! 지금은 학교 수업 시간이 아닙니다. 학생들이 창의적으로 글을 쓸 수 있도록 비켜나시는 게 좋겠어요.”

그런데 그 교사는 “심사위원도 아니면서 왜 그래요?” 라며 쳐다보았다. 선생은 시큰둥한 표정을 짓더니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계속 첨삭과 교정을 해주는 게 아닌가.

요즘 한창 외고 입시시험 부정유출 사건이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는 터라 묵과하면 안 되겠다 싶어 본부 측 사람과 동행을 하여 그곳으로 갔다.

하지만 이번에도 학생과 교사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야외 수업을 나왔나 착각을 할 만치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보아하니 내가 문제였던 것이다. 여태 행해져 오던 관행이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언제 왔는지 그 광경을 딸이 옆에서 다 보고 있었던 게 아닌가. 잘못을 바꾸려 한 내 자신이 그 순간 얼마나 부끄럽던지…. 내 성격을 빼닮은 딸도 한마디 거들었다.

“글만큼은 정직해야지, 실력이 없으면 실력을 쌓아서 다음에 도전해야죠. 나 같으면 그렇게 해서 받는 상이라면 안 받겠어요.”

난 딸아이가 상처를 받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었다. 탄식이 절로 나왔다. 예전으로 치면 백일장은 장원급제 시험이나 다를 바 없으며 대학교 시험의 하나인 수시 시험과도 다를 바 없는데 이렇게 관리가 소홀하였어야……. 딸과 나는 대회 결과를 보지 않고 집으로 서둘러 돌아왔다. 물론, 딸은 낙방하였지만 하나도 서운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아도 도저히 아니다 싶어 그 백일장 홈페이지에 글을 남겼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정직해야 된다고 봅니다. 정직하지 못 한 글로 당선이 된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부끄러울 겁니다. 부끄러움을 모른다면 진짜 불쌍한 것이고요. 물론, 훌륭하신 심사위원께서 공정하게 심사하실 터이지만요.

글을 남기고 나니 그때부터 뭔가가 켕기기 시작하고 ‘그래 문학을 사랑한다고 한 너는 얼마나 정직하니?’라고 따지고 드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정말 정직하게 살았을까? 아니다. 캐내면 캐낼수록 엉망이었다. 나 역시도 빠르고 편한 지름길로 가고자 인생 새치기를 수도 없이 했었다.

어제만 해도 부산행 카페리호를 타려고 예매도 않고 갔다가 다급한 상황을 설명하고는 내 앞의 예비 후보자들 몇몇을 새치기 하고도 미안함 대신 당당하고도 태연해 하지 않았는가. 나는 참으로 모순 덩어리였다.

오늘 아침에 뉴스를 보기 위해 텔레비전을 켰다. ‘한국에서 성공하려면 하얀 봉투를 잘 돌려야 한다’는 뉴욕 타임즈의 기사가 소개되었다. 외국에서까지 우리 민족을 그렇게 보다니!

누굴 탓하기 전에 내 자신부터 작은 것에서부터 남이 보든 말든 정도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것에서부터 충실하면 큰 것에도 충실해 질 수 있지 않겠는가.

언제쯤이면 부정부패 없는 따뜻한 뉴스를 접할 수 있을 것인가. 그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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