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네치아의 또 다른 이름은 베니스라고도 하는데 세계의 응접실로 불리는 산마르코 성당 광장에 선다. 여행객들의 무절제한 먹이로 인하여 비만의 비둘기 떼가 하늘을 덮었다. 인구 8만 명에 비둘기는 10만 마리가 넘는다니 번식률도 대단했다.
베네치아는 자동차가 없는 독특한 도시였으며 담배꽁초를 바닥에 버리는 게 허락된 그 도시의 질서였다. 관광객으로부터 수입이 보장된 도시므로 청소원을 늘려 한사람의 실업까지도 면하게 하는 게 이 나라의 행정이었다.?
천 년 전에 귀족들의 자가용이었던 곤돌라를 타고 시간을 돌려본다. 건물 사이로 갈매기가 오가고 석양의 따사로운 햇살이 거미줄처럼 가늘게 내린다. 미로 같은 섬을 비켜가며 운하를 돌던 시간은 낭만이었다.
희대의 바람둥이였던 카사노바가 갇혔던 감옥 옆이다. 손목만큼의 굵은 창살을 보며 죄인의 절망과 전설처럼 남은 지나간 시간을 잠시 정지 시킨다.
수많은 여자를 유린하다 하물며 자매까지도 탐닉했으며 희롱 당한 대상의 여인들이 천명을 넘겼다니 당시 엄격한 신분 사회에서 그는 교황청으로부터 체포 명령을 받아 옥살이를 했다.
그 감옥에는 유능한 여 간수가 한 사람 있었다. 호기심 많은 그는 과연 어떤 남자이기에 세상을 이렇게까지 뒤흔드나 싶어 보러 갔다가 그만 그에게 매료되고 말았다. 이 계기로 카사노바를 감옥에서 탈출 시켜주고 여 간수는 목이 베여 지중해에 던져진다.
카사노바는 격변기에 유럽을 누비면서 자유와 평등을 전파한 사람이었다. 40여권의 저서를 남긴 박식하고 위대한 저술가였으며 예술과 풍류를 즐긴 낭만주의자로서 벤처 사업가이기도 했다. 한 인간이 이토록 다양한 재능을 띠고 살았음에도 호색가라는 이미지만 남긴 건 무분별했던 사 생활 탓이다.
유럽은 품위와 신용의 도시였다. 건축과 광장 문화와 천 년이 넘은 가로수는 물론이고 전선을 지하로 묻어서 거리가 깨끗했다. 특히 단아한 간판 문화는 유럽의 거리를 품격으로 돋보였다.
안타깝게도 인공 섬의 베네치아가 침수로 사라지는 것은 도저히 막지 못할 위기가 온다는 사실이 아쉬움이다.
지구의 기온 상승으로 해수가 증가하고 지반은 서서히 깎이는 탓이다. 실질적으로 10년 사이에 3센티가 가라앉았다니 훗날 슬픈 전설만 남길 베네치아의 절망을 본다.
귀한 시간과 경비를 들여서 떠난 여행이니 즐거워야 하는 건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다. 콩깍지 속처럼 갑갑한 비행시간이 지루하고 고독하지만 견뎌야 한다.
박물관 관람을 위해 뙤약볕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렸다. 음식이 맞지 않아 허기진 날도 잦았지만 돌아오면 내 나라의 음식이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에서 유럽식도 견딜 만 했다.
넓은 대국(大國)을 매일 7시간 이상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도 적잖은 체력 소모였다. 시차로 인한 불면과 언어의 한계가 고생을 톡톡히 거들었다.
여행은 경제적 여유와 시간적 허락도 중요 하지만 튼튼한 체력은 필수이며 여기에서 하나를 더 얹자면 낯선 사람과 대화의 물꼬도 틀 수 있으면 훨씬 즐겁다.
산다는 건 결국 기다리며 인내 하는 것이다. 눈이 아닌 가슴에 담을 수 있었던 건 기다릴 줄 아는 사람만 갖는 환희다. 조급하게 굴지 않으며 품위를 갖추기까지는 인내의 수련이다.
아무리 돈과 시간이 많아도 기다릴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가슴에 담지 못한다.?편리함과 불편함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공존할 때 균형은 유지된다.
‘다시 한 번 더 오다’라는 뜻을 지닌 베네치아 섬에 과연 또 한 번을 더 올 수 있을지에 대하여 자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