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패와 관련된 수많은 소식들 틈에 나의 눈길을 뜨는 흥미로운 기사가 있었다.
“올림픽 시상대에 올라서는 메달리스트 가운데 상대적으로 행복감을 덜 느끼는 사람은 은메달리스트”라는 내용의 기사다.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18일자 보도에서, 인간행동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한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하면서 행복도는 금-은-동메달 성적순이 아니라 금-동-은메달 순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학자들은 수영 레슬링 체조 육상 경기에서 2·3위를 차지한 선수들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스포츠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누가 행복해 보이느냐”고 물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동메달리스트가 은메달리스트 보다 행복해 보인다”고 답하더라는 것이다.
또한 경기 직후 소감을 물었을 때 은메달에 그친 선수들은 다른 방식으로 경기에 임했더라면 금메달을 딸 수 있었을 것이라는 ‘회고형’ 답변을 주로 했다.
동메달리스트는 금메달리스트와 비슷한 만족도를 보였지만, 은메달을 딴 선수는 메달권 밖인 5위를 한 선수의 표정과 닮았다는 게 학자들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왜 은메달리스트는 자신의 메달 색깔에 만족하지 못할까? 그 이유는 은메달리스트는 자신 보다 좋은 성적을 거둔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데서 불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특히 은메달을 딴 선수들은 자신이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는 생각을 좀처럼 떨쳐버리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반면 동메달리스트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메달권에도 못 들었으면 어쩔 뻔했나. 다행이다”라고 자위하기 때문에 은메달 보다 낮은 성적임에도 불구하고 만족감은 2위라는 게 학자들의 분석이다.
이 기사의 내용은 우리가 삶 속에서 행복함을 누리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행복의 비결은 바로 만족함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갖고 있고, 많은 것을 이루었다고 할지라도 그 상황과 결과에 대한 만족함이 없으면 행복도 없다.
<사노라면>이라는 노래의 구절 중에 “비가 새는 판자 집에 새우잠을 잔데도 고운 님 함께라면 즐거웁지 않더냐”라는 대목이 있다. 비가 새는 판자 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 만족함과 기쁨이 아닐까?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은 만족함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믿음 안에서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신앙인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립보서 4:11-12)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먼저 자족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떤 상황 앞에서도 만족함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불만과 불평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심령의 평안과 기쁨을 잃어버리고 황폐한 영혼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고, 그 황폐한 영혼으로는 능력 있는 삶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다.
행복한 삶으로의 길과 능력 있는 신앙인으로의 길은 자족함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