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서 서울 공능교회와 함께 민다나오 산페르난도 시에 낡은 교회를 새로 짓게 되었다. 드디어 공사가 끝나고 9월 2일 헌당식에 우리 목사님 내외분과 우리 부부가 교회 대표로 참석하게 되었다.
집에서 떠날 때는 비가 왔지만 비행기에 오르니 비가 그쳤다. 환한 달빛이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비행기 날개에 달빛 그림자가 비쳤다. 기내 창밖 달빛 속의 풍경은 사뭇 다른 세상 같았다.
구름이 하늘 위에 뭉게뭉게 깔려서 구름 아래는 모두가 바다 같은 느낌이었다. 끝없이 높은 저 하늘! 우리가 세상 떠나는 날 내 영혼이 갈 수 있는 저 아름다운 하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3시간이 흘러 마닐라공항에 도착하였다.
우리를 마중 나온 분은 필리핀에서 사역하고 계신 교단 파송 김현숙 목사님이었다. 잠시 뒤 우리는 승합차를 타고 숙소인 살롬센터에 도착하여 방을 배정받았다. 이 건물은 미국 선교사들이 지어서 사용하던 집인데 선교여행이나 교회일로 오시는 분들이 여기서 숙식을 한다고 하였다. 방에 침대가 두 개 놓여 있었고 샤워도 할 수 있고 불편이 없었고, 미국 선교사님들의 따뜻하고 귀한 마음도 읽을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식사 후 우린 리잘 공원을 관광하였다. 수목이 아름다웠고 넓은 공원으로 잘 꾸며져 있었다. 필리핀에서 리잘은 우리나라 이순신 같은 충신이라 하였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서 의사이며 문장가였고 스페인의 침략 때 싸우다 순교한 열사였다.
그가 갇혔던 산티아고 감옥을 보면서 우리나라처럼 이곳도 외침이 많았던 한 많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사들을 수장한 곳을 돌아보고 나서 마닐라 시를 벗어나 팍상한 폭포로 이동하였다.
팍상한 폭포를 구경하기 위해 구명조끼를 입고 카누에 몸을 싣고 남편과 함께 강물을 거슬러 올라갔다. 폭포까지 올라가는 도중 한국 관광객을 만나 손을 흔들었다. 다행히 구름이 끼어서 신선한 강바람을 마시며 열대 풍경을 만끽하였다. 저절로 입에서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찬송이 흘러나왔다.
카누의 앞뒤에 젊은 청년 둘이서 배를 조종하였다. 노련한 솜씨로 돌에 안 부딪치도록 물살을 잘 거슬러 손과 발로 잽싸게 조종해 갔다.
아름다운 필리핀의 경관 속에 이국의 정취를 맛보고 새로운 감회에 젖었다. 그래서 사람은 여행이 좋은가 보다.
다음 날 우리 일행은 피곤하였지만,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마닐라에서 민다나오 섬으로 이동하여 밤 늦게 발렌시아 호텔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하고 산페르난도 교회 헌당식에 참석하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우리는 두 대의 차에 나누어 타고 1시간 반 정도 걸려서 교회에 도착하였다. 날씨가 화창하여 나무도 반질거렸다. 우기철이라 예상보다 날씨가 시원했다. 목사님 부부는 한복을 입었고 남편도 가져간 새 남방을 입었고 나도 분홍 투피스 한 벌을 입었다.
차에서 내리니 장승포교회 기념교회라는 기념탑이 세워져 있었다. 서울 공능교회 강 장로님이 비디오를 가져와서 행사 장면을 잘 찍었다. 교회가 생각보다 크고 아름다웠다. 유치원 세미나실 사택 본당 등 여러 채 건물이었다.
한국 같으면 몇십억이 있어야 세울 수 있지만 5천만 원으로 이렇게 좋은 건물을 지었다고 하니 새 집을 살 때나 집안 살림살이를 할 때도 기쁨이 있었지만 새로운 감동이었고 가슴 뿌듯했다. 영혼을 구원할 교회를 짓는데 동참할 물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이곳 헌당 예배는 이웃 교회 성가대도 참여하여 동네의 잔치였다. 사모님이 특송을 아주 잘하여 큰 박수를 받았고 우리 참석자들도 나가서 찬양을 하였다.
공능교회에서는 ‘참 좋으신 하나님’을 불렀고 우리 내외는 ‘주님을 의지합니다’를 불러 박수를 받았고 감사패도 받았다. 산페르난도 시 시장과 여러 인사들도 와서 축하말씀을 하였다. 사회는 필리핀 현지노회 소속 노회장이 보았고 김현숙 선교사님은 계속 영어와 필리핀어를 통역하였다.
행사가 끝나고 온 동네 아이, 어른이 다 모여 헌당식을 축하하였다. 닭도 잡고 돼지도 잡고 열대지방이라 여러 과일이 많았다. 그들이 차린 정성스런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특히 예배시간에 특별한 느낌은 교제의 시간이 길었다는 것이다. 설교하기 전 전 교인이 자리를 이동하면서 서로를 안아주고 스킨십으로 축복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그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우리 한국 교회는 설교만 듣고 바쁘게 집으로 가는 사람도 있지만 그곳에서는 서로가 1주간 동안 못 보았던 얼굴을 보며 정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