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보기(中路相逢)
반보기(中路相逢)
  • 거제신문
  • 승인 2008.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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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마을 전체가 거의 같은 성씨(姓氏)끼리 모여 사는 집성촌이었다.

본디 같은 살붙이 하고는 혼인을 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오래된 풍습이므로 마을 내 혼사는 거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멀리 떨어진 이웃 마을과 사돈을 맺게 된다. 거기다가 여자가 결혼하게 되면 그 때부터 출가외인(出嫁外人)이라는 그럴듯한 명목으로 바깥은 물론이고 친정도 마음대로 갈 수 없게 막아 버렸다.

여자들은 친정부모와 형제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했고, 혹시라도 시집살이가 고되면 먼 고향하늘을 쳐다보고 몰래 눈물을 훔치곤 했다. 친정에 갈 수 있는 것은 형편에 따라 결혼한 1년, 3년, 5년이 되는 해에 근행(覲行)이라는 이름으로 다녀올 뿐이다. 그조차 시부모가 허락해야 가능했다.

그러나 여자의 외출이 허용되는 시기가 있는데 곧, 정월 대보름과 팔월 보름 때다. 정월 대보름에는 마을 행사에 구경나가는 정도지만 추석 무렵에는 친정식구들을 만날 수 있다. 미리 연락하여 날짜를 정하여 되는데 중간쯤에서 만난다고 해서 중로상봉(中路相逢)이라고 부른다.

친정어머니는 딸이 좋아하던 음식을 장만하고, 딸은 친정식구를 먹이기 위해 서로 음식과 선물할 물건들을 가지고 와 그동안 못 다한 이야기로 만남의 회포를 풀게 된다.

일거리가 많은 딸은 그날 일감을 친정어머니에게 넘겨주고 친정어머니는 이를 받아 딸이 해야 할 일을 거들어 주기도 했다. 이 때 하루 종일 만나는 것을 온보기, 한나절만 만나는 것을 반보기라 한다.

아직도 흔적이 남아있는 반보기 장소로는 진해 안민고개, 마산 만날고개, 창원 북면의 백월산, 김해 장유 반룡산 등인데 이때 모여든 수많은 인파로 인하여 산고개가 온통 하얀옷을 입은 여인들로 가득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행사도 1960년 새마을사업과 함께 자치를 감추고 말았다.

추석에 고향을 찾는 풍습은 이런 민족적 뿌리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san10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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