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원
소 원
  • 거제신문
  • 승인 2008.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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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거제수필문학회 회원

저녁 무렵, 아직 올 시간이 아닌데 우당탕 신발짝 떨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아들 녀석이 쏜살같이 들어온다. 수시 합격자 발표가 오늘 저녁 떴다는 것이다.

“엄마! 나 믿재!”
내 손을 꽉 잡고 의기양양하게 컴퓨터를 연다.
“붙었나?”
“후보다……”
“후보?”

한순간 기대도 물거품, 후보라니.

대학 입시에서 예전에는 우리가 부모님의 눈치를 보았는데 요새는 어째 거꾸로다. 앞에서 내색도 못하고 저녁 준비를 하는데, 가만히 보니 저도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대학입시는 누가 만들었는지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험 때문에 웃고 우나.

시무룩하게 앉아 말도 없이 밥을 먹고 있는 녀석을 보노라니 마음이 아팠다. 무언가  한 마디는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실패를 많이 해야 딴딴한 놈이 된다 하더라. 이거 아니면 저건데 뭐가 그리 걱정이고.”
“…….”

맛이 있는지 없는지 밥 한 그릇을 후다닥 다 먹고 나더니 기분 전환한다며 목욕하러 들어간다. 시간이 제법 지났는데도 도대체 나오는 기미가 없다. 혹시나 싶어서 문 앞에 귀를 대어보니 물소리와 함께 멋들어진 노랫가락이 흘러나온다. 태평스런 성격이 이럴 땐 좋구나.

해마다 이맘때면 수험생을 가진 대다수의 집에서는 우리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더욱이 올해부터는 새로 개편된 대학 입시안으로 인해 많은 아이들이 우왕좌왕했다. 논술을 잘해야 된다 해서 논술 공부를 시켰고 내신을 크게 반영 한다 해서 과외도 시켰다. 수능도 많이 반영한다 해서 또 거기에 맞추어 공부도 해야 했다. 아이들을 꼼짝 못하게 옭아매어 놓으니 저희들끼리 정보 교환도 안하는 것 같다. 서로 경쟁자들이기 때문 일까.

그러다 2학기 들어 개편안이 또 바뀌었다. 올해는 대다수 학교에서 논술을 별로 반영하지 않는다고.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학교는 또 어떠한가. 수시 시험에 합격한 아이들은 종일 빈둥거리다가 집에 간다. 공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고3 학생들의 교실에서는, 수능이 코앞이라 죽기 살기로 공부해야 될 아이들과 시간을 죽이기 위해 놀 거리를 찾는 아이들이 한 반에서 공존하며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은 백년대계라 했다. 교육에 몸담고 있는 분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교육부장관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교육 안(案)을 내어 놓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모 후보는 당신이 대통령이 되면 입시 정책을 다시 바꾼다고 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토요일 오후 학교 근처에 가서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아들아, 오늘 점심은 엄마하고 둘이 몸보신할래?”
“옛써~”

늦은 점심시간, 한가한 식당에서 우리 모자는 이런저런 이야기 하며 삼겹살을 배부르게 구워 먹었다.

독서실에 아들을 내려주고 돌아왔다. 입시라는 인생의 한 고비를 맞아 부모인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 주어야 할까. 착잡한 마음에 법당으로 발길 돌리니, 법당 안에는 이미 다른 엄마들이 먼저 와서 소원을 빌고 있다. 백일기도를 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수능까지는 이제 열흘도 채 안 남았다. 무엇한다고 이토록 아이에게 무심했을까.

틈새를 비집고 자리를 잡았다. 한 배 두 배 세 배…… 얼마나 했을까. 삼백 배는 훨씬 넘은 것 같다. 얼굴에 몇 번이나 열이 오르더니 땀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땀은 눈에도 들어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엎드려 합장한 채 가만히 있었다. 땀을 닦기 위해 고개를 들어보니 엄마들이 하나 둘 집으로 간다. 어두워진 법당 안에는 이제 나 혼자 남았다. 넓은 법당 안에 혼자 있으려니 어쩐지 조금 무서웠다. 부처님이 계신데도 말이다.

집에 가기 위해 법당 문을 나섰다. 갑자기 한꺼번에 절을 해서일까 일어서려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어지러웠다.

인생이라는 길고 긴 마라톤에서 이제 첫발을 내딛는 아들에게 무엇을 해 주어야 할까. 마땅히 해 줄 것도 없다. 지금처럼 그냥 믿어주고 바라보며 사랑해 줄까. 힘들고 어려울 때 옆에 있는 사람은 언제나 부모라는 것을 저에게 말해줄까.

아무도 없는 밤길을 내려오면서 나도 소원 하나 품었다. 아무리 빌어도 닳지 않는 소원 하나 품었다. 부처님이 이 소원 꼭 이루어 주시길 바라며 오래오래 염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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