놋그릇
놋그릇
  • 거제신문
  • 승인 2008.09.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릴 때 보면 제사나 명절이 되면 집안 여자들의 큰 일거리 중의 하나가 놋그릇 닦는 일이었다. 마당 한쪽에 멍석을 깔고 서넛이 둘러 앉아 짚으로 만든 수세미에 곱게 잘 빻은 기와가루와 물을 묻혀 닦으면 녹이 빠지면서 반짝이는 그릇으로 변한다. 이 일만 해도 거의 하루가 걸리는 참으로 고된 일이었다.

놋그릇의 한자표기가 유기(鍮器)고, 놋쇠의 한자표기는 청동(靑銅)이다. 구리에 주석을 섞은 합금으로 그 역사는 청동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구리는 무른쇠지만 여기에 주석을 섞는 비율에 따라 강도(剛度)의 차이가 생기므로 이 성질을 잘 이용하면 무기나 생활도구를 종류에 따라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우리는 고려 때 이미 쇠를 두들겨 펴는 방짜제작 기술이 발달하여 금속공예의 수준에 이르렀으며, 국가도 유기생산을 장려한 탓에 안성이나 개성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생산하였으나 일제의 놋그릇 공출과 50년대 말부터 값싸고 쓰기 편한 양은·스테인리스·플라스틱그릇에 밀려 놋그릇은 점차 우리 주위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한식을 먹을 때 「몇 첩 반상」이라는 말을 쓴다. 이때 「첩」이란 숙채(익은 나물), 생채, 전, 회 등의 반찬을 담는 그릇으로 본디는 「쟁첩」이라 부르는데 이것들이 몇 개 놓여지는가에 따라 3첩, 5첩, 7첩 등으로 나누어진다.

「반상」은 반(飯:밥) 상(床:상)으로 밥상그릇을 말하며, 쟁첩 말고도 밥그릇으로 남자용은 주발, 여자용은 바리고, 국그릇은 탕기, 숭늉이나 물그릇은 대접, 김치를 담는 보시기, 찌개나 찜을 담는 조칫보, 간장이나 초장을 담는 종지 등 11개의 기본그릇에 쟁첩이 더해진 수가 한 상이다.

이렇게 많은 놋그릇이 몇 벌은 되어야 하니 주부들이 놋그릇 닦는 일은 중노동이다. 명절이면 보통 때보다 일거리가 조금 더 늘기 마련인데도 이를 스트레스로 받아들이며 엄살을 떠는 요즘 주부들에게 놋그릇까지 닦게 했다가는 큰일 날 뻔했다.

이 귀찮은 놋그릇이 생선회의 비브리오균을 99.9%나 잡아 준다니 참 놀랍다.(san1090@hanmail.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