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종소리
나의 종소리
  • 거제신문
  • 승인 2008.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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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주/거제수필문학회원

“뎅그렁, 뎅그렁”

삼라만상이 잠든 새벽 4시쯤이면 산사에서 종소리가 들려온다. 종소리는 소나무 숲과 들판을 지나 촉촉한 땅에 닿을 듯 나직하게 다가와 중생들을 일깨워주는 소리다.

산사의 종소리가 끝나고 나면 마을 교회당 종탑에서 둔탁한 금속성 종소리가 울렸다. 고요한 새벽 두 개의 종소리에 깨어나 깊은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 마을 주민들만의 일상생활 중에서 행복이다.

그러던 어느 날 소음공해라면서 상대편을 고발하게 되었고, 스님과 목사님은 파출소에 가서 앞으로는 종소리를 내지 않겠다는 각서를 썼다고 한다. 그 후로 마을 주민들은 새벽 종소리를 들을 수가 없게 되었다.

몇몇 사람들은 ‘목사님이 너무했다, 스님이 도가 지나쳤다’라고 서로 편 갈라 서기를 하였고, 그 이면에는 남의 종교를 이해하고 배려하지 않는 불평의 소리가 커지면서 종소리로 인한 잡음이 한동안 이어져 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문제는 종소리의 아름다움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목사님이 들어보는 산사의 범종 소리는 적막 속에서 고요를 일깨우는 소리 같았고, 교회의 높은 종탑에서 뿌려지는 소리는 스님의 가슴을 쿵쿵 울렸다고 한다.

종소리 때문에 뿌리박힌 신앙심이 쉽게 흔들리거나 개종(改宗)을 할 신도는 없을 텐데 스님의 생각으로는 교회의 종소리를 듣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게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목사님 또한 산사의 종소리를 들으면 교회의 신도가 줄어들게 될까 아닌가 생각해서였다고 하니…….

요즘은 부처님 오신 날에 개신교회에서도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성탄절에도 사찰에서 축하 현수막을 달아주고 있다. 부처님의 자비와 예수님의 사랑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상생과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가자고 종교의 벽을 허무는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도 남의 종교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생각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었다.

그 사건 이후로 교회도 암자도 신도가 줄어들게 되었고 스님도 목사님도 우리 마을을 떠나가게 되었다. 얼마 후 교회는 팔려서 정교회 소속 신부가 6개월 동안 맡아 시무를 하다가, 어느 날 “총재님 저 인도에 갑니다.”

“인도에 무엇하러 가십니까.”라고 했더니 선교하러 간다는 것이었다.

그 신부는 극렬한 환경보호주의자였다.

“그곳에 가서는 우리나라에서 했듯이 환경 문제가지고 너무 지나치게 하지 마십시오. 인도(印度)는 강물에서 용변 보고, 그 몇 미터 아래서 그 물로 취사를 하는 나라입니다. 나는 하나뿐인 지구환경 보호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문제에 깊게 관여한다면 선교활동에 소홀해 질 수도 있을까 싶어서입니다.”

사실 신부님은 우리 지역주민이 원하는 지역개발사업에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여주기 위해서 친환경 분야에 앞장섰던 분이다. “건강 조심하시고 귀국할 때까지 선교활동 열심히 하다가 오십시오.”라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며칠 전 신문에서 읽은 기사 중에 모 대학교 S교수가 종단 소속 사찰과 비리에 연루되었다고 폭로되었는가 하면, 개신교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선교활동으로 세간 여론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종교는 가장 깨끗한 자기양심의 기도이고 자기 행동이 아니겠는가.

이제 나도 이순(耳順) 고개의 중간에서 그 정겨웁고 아름다웠던 종소리를 추억하고 있다. 그리고 초아의 봉사에 몸담은 지도 30년, 이제 가슴에 종 하나 달고 싶다.

지금까지 타인에게 깊은 감동으로 남게 할 종소리가 있었는지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이제부터라도 나의 종소리가 비록 멀리 퍼져 나가지 못할지라도 그 종소리가 맑고 청아한 소리가 되어 한 사람의 따뜻한 가슴속에라도 머물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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