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라클레스가 어느 날 아주 좁을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걷고 있는데 사과 크기의 이상한 물건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헤라클레스는 별 생각없이 그 물건을 발로 툭 걷어찼습니다. 그러자 그 물건은 어느새 수박처럼 커져 버렸습니다.
“어, 이게 뭐야, 나를 놀리네?”
흥분한 헤라클레스는 그것을 다시 힘껏 찼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 물건이 바위만큼 커져 버렸습니다.
“오호, 천하의 헤라클레스를 이겨 보겠다고? 어림도 없다. 이놈!”
열이 오른 헤라클레스는 이번에는 들고 있던 커다란 쇠뭉치로 그것을 박살내려고 내리쳤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것은 아까보다 두 배나 더 커져 마침내 그가 걸어가는 좁은 길을 막아 버렸습니다.
헤라클레스는 너무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웃통을 벗어 버린 채 한참 동안 그 물건을 들어 올려 집어던지려고 낑낑 거렸답니다. 하지만 힘을 쓰면 쓸수록 그것은 더 커져 버려 마침내 산더미만 해지고 말았습니다.
잠시 후 씩씩거리고 있는 헤라클레스 앞에 아테네의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는 산더미만큼 커져버린 이상한 물건을 향해 그녀는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물건은 순식간에 작은 사과만한 크기로 되돌아가서 길 한 모퉁이에 툭 떨어졌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이상한 물건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분노라는 감정입니다. 분노라는 감정은 건드리지 않고 내버려 두면 작아지지만 건드릴수록 더 커지게 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외부의 작용 앞에서 분노로 반응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서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고 결국 자기 자신을 파멸의 길로 이끄는 모습도 봅니다.
하지만 분노는 다스려야 할 감정입니다. 다스리지 않으면 그 분노의 감정은 더욱 자라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분노를 다스리고 온유함에 이른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모세입니다. 모세는 젊은 시절 분노에 늘 약한 모습을 보였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동족 히브리인을 압제하는 애굽 사람을 향해 분노를 발하다가 결국 살인자가 되었던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 민족을 이끌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마실 물이 없다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백성들을 향해 분노를 발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 분노는 그가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결정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노의 사람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한 사건 때문에 반항하는 미리암과 아론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침묵으로 일관 합니다. 이런 모습은 고라 자손들의 항거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라 자손들이 모세와 아론을 향해 항거할 때도 모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런 변화가 가능했을까? 그 비결은 하나님 앞에 엎드림입니다(민수기16:4).
모세는 자신을 거스르는 사람, 분노하게 만드는 상황 앞에서 먼저 하나님께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엎드림을 통해 영적인 깊이가 깊어짐으로 외부의 작용에 의해 마음속에 생기는 분노를 다스릴 힘이 생긴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의 쿠션입니다. 그 쿠션을 간직한 사람이 외부의 환경으로부터 주어지는 분노를 극복하고 온유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