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정어머니는 17세의 어린 나이로 결혼하시고 부부간에 금슬이 좋기로 동네에 소문이 난 부부였다. 매사에 솜씨가 좋아서 여름이면 하얀 모시옷을 입고 나란히 노인학교에 다니며 새벽마다 공부를 하였다. 아버지는 노인학교에서 강의할 자료를 정리하시고 어머니는 곁에서 천수경을 읽거나 한자 공부를 하셨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1년여 동안은 눈물로 지내시며 하루 종일 남편의 영정사진 앞에서 혼자서 대화를 하셨다. 우리 내외가 외출이라도 하고 나면 혼자 외롭고 쓸쓸해서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쓰다듬으며 얼마나 우셨을까. 남편이 안 계신 빈자리를 자식이 아무리 잘 돌본다고 해도 빈 가슴이 채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혼자되신 어머님을 곁에 사는 큰딸인 내가 1년을 모시다가 점점 치매 병세가 악화되면서부터 우리가 외출하기 전에 살짝 먼저 나가서 길을 잃곤 해서 아침이면 어머니를 붙잡고 실랑이를 했다.
“강송자의 어머니입니다. 전화번호는 ○○○○번입니다.”라고 등 뒤에 이름표를 달아놓고 나서부터는 파출소에서 전화가 와서 모시고 온 일이며 틀니를 빼서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가 종이에 싸서 휴지통에 버린 것을 찾는다고 몇 차례 힘들게 한 날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신랑이 많이 이해해 주어서 고마웠다.
형제간들이 차례로 모시다가 의논한 끝에 치매병원에 입원시켰다. 형제가 많아도 어머님 한 분 제대로 모시지 못하는 죄책감과 길을 잃고 헤매일 때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허구한 날 아파트 문을 꼭꼭 잠가두고 나오면 혼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는 생각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내 눈물이 앞을 가렸다.
오늘은 막내 동생과 함께 어머님을 뵈러 문산행 버스를 탔다. 노인 요양원으로 가는 길옆의 농촌 풍경이 아름답다. 과수원의 배꽃이 하얗게 피어나고 있다. 아름드리 가로수는 유난히 푸르고 호수의 물빛도 정오의 햇살을 받아 눈이 부시다.
우리 어머니도 젊었을 적에 희고 고운 살결로 미인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피부에 검버섯과 얼굴에 주름뿐이다. 병원에 도착하니 복도에서 우유와 빵을 손에 들고 아이들처럼 좋아하고 계셨다.
와락 껴안았다. 눈물이 쏟아진다. 어머니 방으로 갔다. 치매는 알츠하이머라는 병으로 뇌가 줄어들어 기억을 상실한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요즘은 치매 환자가 늘어나고 있어, 우리도 잠재 치매 환자라고 할 만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환자나 가족의 부담을 덜기 위하여 요양병원을 건립하고 진료비도 지원하는 등 여러 가지 시책을 추진하고 있는 줄로 알고 있다.
증세도 여러 가지다. 우리 어머니는 나이가 좀 많아 보이는 사람은 모두 어머니라고 부른다. 나를 보고도 어머니라고 부른다. 돌보아주는 의사나 간호사에게는 항상 장점을 칭찬하며 천진한 아이 같은 미소가 흐른다.
어떤 할머니는 음식을 먹다가 아이 찾아오겠다며 나가기도 하고, 가는데 차비를 못 주어서 미안하다는 분도, 밥이 다 되가니 밥 먹고 가라고 손을 잡는 분도 있다. 한 분은 운동을 시킨다고 어머니 손을 잡고 하루 종일 복도를 걸어다니고, 어떤 할머니는 어머니 다리를 베고 눕는다. 아프니까 많이 걷지 말고 다리를 베지 말라고 해도 금방 잊어버리는 기억상실 증세다.
과거의 아픈 기억을 지우려고 애를 쓰는 사람은 술과 약물로 망각하려고 몸부림치다가 결국 알콜 중독자가 되어 폐인이 된 것을 보았다. 치매는 모든 기억을 깨끗이 지워버리는 지우개 같은 병이다.
어머니는 젊어서 농사도 지으시고 큰 가게를 운영하시면서 근검절약으로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할 만큼 돈도 많이 버셨는데, 지금 총 재산은 입고 있는 옷 한 벌과 몸에 지니고 있는 화장지 몇 조각뿐이다. 늙고 병들면 재산도 명예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며칠 전에 일생을 부부 교사로 정년을 맞으신 지인이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문병을 갔다. 남편은 중풍과 치매 초기 증세로 입원 중이고 90세가 된 아내도 입원해 있었다. 그래도 아내가 있어 말동무도 되고 휠체어를 태워 가끔 산책도 한다고 했다.
인생은 헛되고 헛되다는 솔로몬의 고백처럼 아름답게 건강하게 살다 가는 것이 모든 사람의 희망이다. 먹고 걸을 수 있고, 보고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사랑하는 남편이 곁에 있어 오늘 행복하다.
병마가 오더라도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온 시간에 감사하며 베풀고 많이 사랑하며 하루하루 기쁘게 맞이해야겠다. 모두가 빈손으로 떠나게 되는 삶이라면 나의 가장 가까운 내 옷장부터 홀가분하게 정리하고 가볍게 사는 삶을 실천해야겠다.
나의 기도는 오늘도 건강한 하루가 되어달라고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