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마 문학의 胎動
청마 문학의 胎動
  • 거제신문
  • 승인 200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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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영 거제문인협회 회장

2008년은 청마시인이 탄생한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1908년은 세계열강들이 앞 다투어  식민지를 만들던 시기다. 대한민국도 그 열강들의 표적이 되어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에게 몇해 후 지배되고 말았다.

1908년은 청마를 비롯, 김유정 등 한국을 대표할 만한 문학가들이 탄생한 해 이기도 하지만, 윤봉길 의사 등 의인의 탄생과 한글을 제대로 알고 지켜가야 한다는 한글학회의 탄생도 이 해의 일이며 신시의 출발로 보는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도 1908년을 기점으로 한다.

1908년은 이런 뜻 깊은 역사를 남긴 반면, 일본과 중국이 체결한 간도협약으로 삼천리 화려강산 저 넘어 흑룡강까지 우리 조상들의 문화와 얼이 살아 숨 쉬는 간도를 잃고, 세계에서 가장아름다운 말과 글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소위 식민지 시대로 가는 슬픈 역사의 서막이 오르던 때이기도 하다.

이런 세계사의 분위기 속에서 자칫 희망을 잃고 오직 살아남기에 급급하여 굴하지 아니하면 안될 역사적 운명의 소용돌이에 빠져 들지도 모르던 때, 청마는 삶과 문학이라는 갈림길에서 고뇌를 거듭한 끝에 드디어 ‘문학’의 길로 접어든다.

친형인 동랑의 영향도 있었지만 이미 청마는 산과 바다, 푸른 들판, 시내와 정자나무로 이어지는 한적한 시골 농촌의 생태적 자연환경에서 유년시절을 함께 했기에 자연의 순수를 노래하는 ‘문학’의 길로 접어들 수 있었을 것이다.

훗날 청마의 작품이 주류를 이루는 산과 바다, 꽃과 나무, 계절, 밤, 어머니…. 이런 소재들이 그의 어린시절 삶의 배경을 짐작케 하는 것들이며, 이런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성장하면서 그 감성은 점차 인본주의에 빠져든다.

이는 농촌의 대가족 중심의 가계에서 가족, 그리고 씨족사회의 흔적이 남아있는 이웃 친지들로 이뤄진 고향에서 형성된 인성이다. 이러한 사상들이 어머니와 할머니, 벗을 낳고, 드디어 그는 민족애로 명세, 깃발, 역사로 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출생기는 청마가 자신의 출생에 대해 쓴 시다. 검정포대기 같은 산방산 기슭에서 자신이 출생한 거제도 둔덕골 고향마을의 밤이면 부엉이 괴괴이 울고, 남쪽 둔덕만 포구에는 고향 사람들이 어질고 순한 마음을 가졌건만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로 위태로운 융희 2년, 즉 1908년.

그런 암울한 시기에도 계절은 천년을 변함없이 찾아들어 지붕에는 박덩굴 자라고, 석류꽃 필 때 어진 생각만 하시던 어머니는 청마를 잉태해 인근에 살던 왕고못댁 제삿날 밤 열사흘 달빛을 밟고 세상에 나, 제발 명줄이나 길라고 돌메라 부른 출생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고향마을의 분위기, 친지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당시 시대상, 가정 분위기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청마는 융희 2년 1908년 7월 4일 경남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 507-5번지에서 아버지 유준수와 어머니 박우수 사이에 5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청마의 아버지 유준수는 당시 동네 젊은 의원으로 날마다 글을 읽고 지식을 습득했다.

청마는 아버지의 글 읽는 모습, 마을 사람들의 순수한 정, 어머니의 어질고 착한 마음씨, 산천을 따라 이어진 들판, 맑고 고운 하천과 바다가 있는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산새들의 축복아래 태어나, 그 유년의 정서가 깔린 주옥같은 글을 탄생 시켰다는 단정에 대해 어떤 이론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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