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제 토박이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매년 먹어온 탓에 마치 동지 팥죽처럼 대구탕을 먹어야 한 나이를 더 먹게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었다.
한 해라도 빠트리면 서운하고 대구를 먹지 않으면 새해를 맞는 기분이 나지 않으니 대구와 더불어 나이를 먹은 셈이다. 그래서 거제사람들에게 대구는 단순한 물고기를 넘어 해(歲)를 알려주는 보세어(報歲魚)인 것이다. 대구는 연어와 마찬가지로 제가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고기다.
모해회귀(母海回歸)라 할까. 우리나라에서 나는 대구의 7할이 거제 연안에서 잡히니 대구의 본적은 거제도다. 대구의 고향 거제도!그러니 거제사람과 대구를 어찌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있겠는가. 대구는 대구어(大口魚), 대두어(大頭魚), 구어(口魚), 화어( 魚) 등으로 불리는데 모두 마땅한 이름이 아닌 듯하다.
큰 입에 못지않게 커다란 눈망울, 과감하게 다문 아랫턱 밑에 멋지게 자란 수염(수염길이는 눈의 지름과 비슷하다), 듬직하고 의젓한 몸매, 제각기 다른 담갈색 추상화 반점, 장거리 여행에 가능하도록 잘 발달한 노(楫)인 지느러미들, 이런 특징들을 지닌 고기이름이 고작 ‘대구(大口)’라니….
아무튼 대구는 때가 되면 부른 듯이 돌아오는 특성(본능)과 큼직하고 상서로운 모습으로 신의를 중히 여겨 언제나 변함없고 선이 굵은 거제사람의 품성을 상징하는 고기다. 한동안(1970년대 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대구가 나지않아 어민들 뿐아니라 거제사람 모두가 안타까워 했는데, 대구 흉어의 원인은 연안의 오염과 아무데서나 시도 때도 없이 마구잡는 남획 때문이었다.
이에 금어기를 설정하고 대구의 회유길목인 동해안에서의 대구치어(21㎝미만)에 대한 어업단속을 하는 한편 1982년부터 지속적으로 대구인공수정란 방류사업을 해온 결과, 차츰 어획량이 증가하여 이태전인 2006년부터는 대구 축제까지 하게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스런운 일인가.
나이든 분들의 기억을 빌리자면 1950년 전후까지 거제도 거의 전 연안에서 고루 대구가 잡혔고, 대구 어획량도 풍성해 대구철이 되면 소(牛)구루마에다 실어 여러차례 넓은 덕장에서 따 말린 후 냉장시설이 없던 시절인지라 반(半) 건조상태로 만들어 유통시킬 수 밖에 없었다 한다.
가자(家慈·어머니)의 열댓살 처녀때 한내에서 대구어장을 하던 외할아버지의 기별을 받고 갔더니, 자기 키보다 더 큰 대구를 짚으로 묶어 머리에 턱 얹어주며 “집에 가서 약대구 만들어 놔라”하시기에, 지엄하신 아버님의 영을 어길 수 없어 그 큰 대구를 이고 죽을둥 살둥 재(고개)를 세 개나 넘어 다공 외가 마루에 내려놓고는 엉엉 울었다 한다.
워낙 다부지고 강건한 성품인지라 가능한 일이었지 싶은데 이 사실만으로도 자료에 나타난 - 가장 큰 대구는 길이 1m에 체중 22.7㎏이라는 - 기록은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
대구는 무를 빚어넣고 끓인 맑은 국(지리), 대구탕, 대구전, 대구떡국 외에 찹쌀가루 콩나물 묵은지 된장 등을 넣은 찜, 젓갈 등의 요리를 하는데 생대구회 또한 일품이다. 특히 통대구를 내장만 아가미쪽으로 조심스레 들어내고(알은 그대로 두고 배는 가르지 않는다) 그 자리에 소금을 채워 말린 약대구는 온 가족의 보신용 영양식품으로서 깊고 긴 겨울밤 청주나 약주(요즘으로는 와인)의 안주로 그저 그만이다.
모든 대구의 요리는 대구의 듬직한 몸푸와 모습 그대로 담백함이 특징인데 이 또한 꾸임없고 푸근한 거제사람의 인심을 그대로 닮았다. 이렇게 좋은 자랑거리가 있는데도 우리 거제에는 대구요리 전문식당 하나 없다. 특히 여행지에서의 음식은 여행자에게 매우 중요한 선택요인이 되며 당해 관광지(여행지)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그 지방의 음식은 갈수록 관광자원으로써 비중이 커지고 있다.
우리 거제의 관광요소 중 가장 뒤떨어진 분야는 단연코 음식임을 생각할 때 대구요리 뿐아니라 거제의 음식 전분야는 반드시 개선하고 수준을 높여야 할 과제임을 거제사람 모두 명심해야 한다.
지금 대구가 제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거제도 연안에서 수정된 대구의 란(卵)은 한 달 후 부화하여 치어가 되고 봄에 동해를 거쳐 알래스카 근해와 오호츠크·베링해 등 북태평양까지 올라가 3년을 자란 뒤 다시 산란을 하기 위해 한류를 따라 남하해 태생지인 거제바다로 돌아온다.
이 수만리 여정속에서 대구는 천신만고를 겪을 것이고 그래서 생존율이 채 1%도 되지않는 숫자만 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로 돌아온 대구는 그 자체가 대성공인 것이다. 살기가 힘들수록 한 번쯤 대구의 생애를 생각해 보자.
온갖 간난신고를 이기고 제 본향인 여기 거제 연안까지 다시 찾아온 대구를 보고 새로운 용기를 얻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