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소리
비행기소리
  • 거제신문
  • 승인 2009.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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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태 거제수필문학 회원

무릎 연골 파열로 수술을 위하여 병원에 입원하였다. 7월의 무더운 여름날 거제 산방산 비원의 낮은 언덕을 내려오다 발을 헛디뎌 ‘뚝’ 하는 소리와 함께 주저앉았던 무릎이었다. 그러고도 여행의 유혹을 못 이겨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면서 물리치료로 대충 땜질하고 절뚝거리며 백령도, 울릉도, 독도, 선유도를 다니다가 결국 서울의 신월동에 있는 관절 전문병원에 들어오고야 말았다.

오래된 건물이어서 2인실이라 해도 보호자 두 명이 바로 눕지 못하는 공간과 퀴퀴한 냄새와 전자충격 파리채로 모기를 잡아야 하는 병실에서 무엇이든 성급하고 대충 처리하는 나 자신을 원망하였다.

‘어쩔 수 없지, 내 딴에 인터넷을 통해 아주 잘하는 병원이라고 선택했는데……, 할 수 없지.’

두 개를 포갠 베게에 상체를 맡기고 쇠창살 사이로 살며시 찾아드는 불빛을 바라보다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쎄에’ 하고 바람소리가 멀리서부터 몰려오는 것 같다. ‘비가 오려고 그러나?’ 그러다 점점 커진다. ‘아 아, 그렇구나. 근처에서 지하철이 지나가는 소리구나.’ 싶었는데, 그 소리는 빠르게 창문 옆으로 지나간다. 화장실을 갔다가 문을 들어서자 아까 들렸던 그 소리가 또 지나간다.

옆 자리에서 무릎을 지그시 눌리면서 재활운동을 하고 있는 같은 방의 환자에게 ‘지금 지나간 게 지하철이냐?’고 물었더니 비행기가 지나간 소리란다.

멀리서는 바람 소리와 같았고, 가까이에서는 지하철 소리 같았던 그 소리가 비행기 소리라니! 안 그런 사람들이 많겠지만, 비행기를 탈 때 마다 나는 긴장한다. ‘비행기가 곧 이륙하니 안전벨트를 매라’는 안내 소리에서부터 긴장한다. 비행기 동체가 흔들리며 엄청나게 큰 소리를 내고 가속을 붙이는 그 순간 아랫도리가 딱딱해지고 항문의 괄약근이 짜릿해 지며, 손과 등골은 이미 땀에 젖어 있다.

한편, 도착할 때의 긴장은 출발 때보다 더 심하다. 공중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그때마다 나는 ‘죽느냐 사느냐’의 순간으로 느낀다. 손은 물론 두 다리조차 앞좌석 뒷부분에 버티면서 비행기가 가속을 줄이고 정지하기 위해 내뱉는 마찰음 소리와 비행기 동체의 흔들림이 끝나는 순간까지 양손으로 의자 손잡이를 당기고 몸을 깊게 누르고 있어야 한다.

‘비행기’ 하면 이런 큰 소리와 엄청난 긴장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바람 소리 같기도 하고 전철 소리 같은 비행기 소리에 전혀 딴 느낌이 들었다.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비행기 소리의 실체를 알고 난 뒤부터는 시끄럽게 느껴져 밖으로도 나가보았다. 엄청나게 큰 모습으로 내려오는 비행기는 전부 돌아오는 비행기였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비행기 소리에 어떤 반응일까?’

한 발을 베개 위에 올려놓고 편안히 누워 있는 같은 방의 환우는 방으로 들어오는 나를 보고 “지금은 나은 편입니다. 국제선이 영종도로 갔으니…, 그리고 이곳 사람들은 밤에 수시로 깨어 기차길 옆처럼 출산율이 다른 데보다도 높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 자는 방이라 잠이 잘 들지 않는다. 멀뚱멀뚱 천장과 창문을 쳐다보다가 늦게 도착하는 비행기 소리에 더욱 심란해진다. 창문을 닫아 본다. 갑자기 옆 환우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온다. 눈을 감았다 떴다 하다가 천장을 보니 옆 창에 비친 빛 때문에 천장의 무늬가 뚜렷하다.

커지는 환우의 코 고는 소리에 점점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비행기 소리가 들린다. 코 고는 소리도 들린다. 두 소리가 합쳐지면 엄청날 것이다. 그러나 예상외로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한 기분이다. 두 소리가 포개지면 더 큰 소리가 나야 하는데, 조용한 느낌은 왜 그럴까!

다음 날에도 환우의 코 고는 소리는 여전하였다. ‘이때쯤 비행기가 오지 않을까……,’ 하면서 오히려 비행기 소리가 기다려지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두 소리가 포개지면 더 큰 소리가 날 수도 있지만, 마음상태에 따라 더 작아질 수도 있다. 한쪽의 잡음에 신경 많이 쓰이던 것을 다른 잡음이 상쇄시켜 주는 느낌이다.

콧소리와 비행기 소리는 작아졌다. 오히려 어울려져서 조용해 졌다. 이런 조용함은 마음에서 나오는 편안함일 것이다. 여유가 생긴다. 비행기도 이제는 탈 만할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병원에 입원한 지 겨우 이틀 만에 좋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동안 너무 서두르고 욕심을 부렸다. 젊어서도 급한 성격으로 물불을 가리지 못한 적이 있었고, 여행이나 등산 때도 서두르는 적이 많았다. 이번 무릎의 인대 파열만 하더라도 나이를 잊고 성급함을 부렸던 행동에 원인이 있었을 것이고, 그런 무릎으로 또 장거리 여행에 나섰던 나의 무모함을 다시 반성해본다.

한 번의 입원으로 이리 좋은 깨달음을 얻었는데, 앞으로 숱하게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면 ‘정말 만사를 초월하여 탈속한 경지에 이르지 않겠나…,’ 하는 엉뚱한 생각으로 쓴웃음을 조용히 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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