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1872년에 미국의 버몬트주에 살고 있는 공장직공인 제임스라는 사람이 1872년 크리스마스부터 그 이듬해 7월달까지 미완성 부분을 쓰고 서명하여 1874년에 출판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이것을 서구에서는 디킨스가 집필하던 책을 완성하지 못하여 제임스에게 환생한 것이라고 하여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지구상에 문헌상으로 윤회에 대하여 나타난 것은 기원전 5,000년경에 바가바드기타에 기록되여 있다. 바가바드기타에 의하면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는 한 번도 없었다. 너도 도한 그러하다. 그리고 미래에도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온몸에 꽉차있는 영혼은 불멸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누구라도 불멸하다는 영혼을 파괴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은 영혼을 놀랍게 바라보고 또 영혼을 말로 설명하고 또 귀로 전해 듣는다. 그렇다고 영혼을 바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태양이 스스로 우주를 비추고 있듯이 육체속에 간직된 생명체는 온몸의 의식을 일깨워주고 있다. 육체속의 생명체는 마치 에너지가 물질로 만들어진 기계 위에 있듯이 육체에 있는 것과 같다.
영혼은 육체와 일체인것 같지만 공기가 향기를 옮겨주듯이 생명을 한 육체에서 다른 육체로 옮겨주는 것이다. 마치 자동차나 비행기가 운전자 없이는 움직일 수 없듯이 영혼없는 육체는 제 기능을 발휘할 수 가 없다.
영혼도 낡은 육체를 버리고 새 육체를 찾는 것이다. 사람들이 낡은 옷을 버리고 새옷을 입듯이! 이리하여 영혼은 끝없는 태어남과 죽음의 쳇바퀴에 얽힌다. 태어나 자에게는 죽음이 필연적이고 죽음에 다달은 자는 태어남이 필연적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영혼과 육체가 생과사의 되풀이 됨을 알지 못한다.
자기 자신의 진자아를 본 사람은 이러한 모든 현상을 명확하게 본다고 말한다. 또한 티벳에서는 달라이라마 즉, 린포체 신앙이 있다. 즉 죽을 때에 다음 생에 자기 자신이 받을 몸을 예고하는 것이다.
그들은 죽음을 큰 축복으로 여긴다. 우리들이 명절때 새옷을 갈아 입듯이 낡아버린 육신을 새 육신으로 바꾼다고 하는 의미로 죽음을 맞이하고 축복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발상지인 고재 이스라엘에서도 윤회설은 있었다. 유태인 역사학자 죠셉은 이스라엘의 주요 종파 중 2개인 에세네파와 바리새파가 윤회설을 가르쳤으며 단지 사두개파만은 윤회설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말하며 히브리인들이 믿었던 케발라교의 비밀교리라고 한다.
예수의 출현 후 500여년 동안 많은 기독교인들이 윤회설을 믿었으나 553년 공식적으로 교황의 승인을 못한채로 바티칸 공회는 윤회를 이단아라 공포하고 윤회설을 믿는 사람들을 태형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윤회를 메뎀프시코우스라고 불렀고 고대인들 종교 거의 모두가 윤회사상을 믿었다. 고대 이집트인, 그리스인, 힌두교, 불교, 회교, 초기 기독교인, 북아메리카 원주민, 켈트족 등 거의 모든 고대인들이 윤회를 믿었던 것이다.
즉 윤회에 대한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두 알고 믿었다. 윤회가 된다는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생명에 대하여 수행과 정진, 다시 태어날 생명을 승화시킬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성규 교수의 논문 중 일부를 발췌 인용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