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차 내에서도 같은 상황 반복 “성숙한 시민의식 아쉽다”
지난해 신규발령을 받아 거제소방서 119구급대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상희 구급대원(여·30)은 요즘 야간출동이 꺼려진다. 술에 취해 폭력과 폭언을 일삼는 구조자를 거의 매일 만나야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처음으로 근무한 곳은 거제소방서 신현119구급대. 지난해 여름휴가철과 연말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새벽시간 출동 명령을 받아 현장에 도착하면 술에 취한 구조자들에게 온갖 모욕적인 말을 듣는 것은 다반사. 여기에다 폭력을 휘두르는 구조자까지 만나게 되면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구급차 안에서의 폭행과 폭언 또한 도를 넘어 선지 오래다. 이들 구조자 대부분이 술에 만취해 구급대원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폭력을 퍼붓는다.
폭언과 폭력에 어지간히 단련된 이 대원도 지난해 11월 고현동 모병원에서의 기억은 생생하기만 하다. 이날 새벽 2시께 이 대원이 출동한 곳은 성포 선착장. 가조도에서 자해를 한 구조자가 배에 실려 육지로 나온다는 신고를 받은 그녀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배를 기다렸다.
배에서 내린 40대 남성을 구급차에 태워 인근 병원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난동을 부리며 치료를 거부하는 구조자를 진정시킨 그녀는 병원에 도착했고 병원 침대로 옮기는 과정에서 머리에 큰 충격을 받았다.
술에 만취해 있던 구조자가 이 대원의 머리를 주먹으로 가격했기 때문이다. 병원관계자와 가족들의 저지로 더 이상의 폭행은 당하지 않았지만 밀려드는 서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
이 대원은 “폭력을 행사하고 욕설을 퍼붓는 구조자들은 거의 모두가 술에 취한 남성들”이라면서 “구급차에 동승하면 술을 따르라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시비를 걸거나 주먹을 휘두르며 위협하는 경우가 많아 곤혹스럽고 두렵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5년 동안 119구급대 활동을 해 왔던 김문겸 소방교(33)도 만취자들의 행태에 많은 대원들이 힘들어한다고 털어놨다. 그는 구조자들이 난동을 부리면 경찰에 연락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여성대원들이 출동을 하면 남자대원들보다 험한 경우를 당하는 일이 더 많다고 설명했다.
김 소방교는 “술에 취해 구급차를 발로 차고, 욕설을 퍼부으며 대원들에게 침을 뺏는 등의 일은 비일비재 하고 심지어는 흉기를 휘두르기까지 한다”면서 “구조자를 말리는 과정에서 조금만 과격한 행동을 하면 시민을 위협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꾹 참을 수 밖에 없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는 또 “구조자들 대부분이 도착이 늦었다거나 불친절하다며 대원들을 몰아 세운다”면서 “만취상태로 정확한 위치를 밝히지 않아 도착이 늦어졌는데도 차에서 내리자마자 폭행을 당하는 경우도 있어 현장 활동에 대한 스트레스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같이 현장활동에 나선 구급대원들이 폭행을 당하는 일이 늘어나자 소방본부에서도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지난 2006년부터 운전석과 뒷좌석이 분리된 구급차의 경우 CCTV를 설치, 운전자가 뒷좌석의 상황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최근 여성대원들의 수가 증가하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폭행사례가 급증,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윤종암 거제소방서 예방대응과장은 “더 이상 구급대원들이 폭행을 당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거제시민들이 한층 성숙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면서 “목숨을 걸고 화재현장에 출동하고 구조·구급활동에 임하는 소방관들이 자신의 임무에 충실 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격려와 배려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한편 구급대원 폭행행위는 형법 136조1항 공무집행방해로 최고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5년 이하의 징역 등의 처벌을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