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하여 마(薯)를 캐어 생계를 유지했던 탓에 맛둥(薯童)이라 불렸는데 마침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가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서라벌로 가서 머리를 깎고 스님으로 변장하여 아이들에게 마를 나누어 주며 동요를 부르게 한다.
「善化公主主隱(선화공주님은) / 他密只嫁良置古(남 몰래 시집가 놓고) / 薯童房乙(맛둥 도련님을) / 夜矣卯乙抱遺去如(밤에 몰래 안고 간다)」
이두로 표기된 가장 오래된 4구체 향가인 서동요는 너무나 극적인 러브 스토리를 담고 있다. 이 노래를 사실로 믿고 공주를 궁중에서 쫓아내어 버린다. 억울하게 부정한 여자로 몰린 공주는 유배지로 가는 길에 서동이 나타나 자초지중을 말하고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백제에 온 공주는 서동의 살림이 어려운 것을 알고 궁을 나올 때 모후가 준 금을 보여주자 서동은 그런 건 나에게도 많다고 하면서 마를 저장하던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금을 보여 준다.
이 금을 진평왕에게 보내면서 서동은 사위로 인정을 받게 되고 백제왕이 되는데 결정적인 힘을 써주게 된다. 무왕이 된 서동이 하루는 왕비와 함께 용화산 아래 큰 못가에 이르렀는데 미륵삼존이 발현하자 왕비의 간청으로 그 못을 메우고 절을 짓게 된다. 그 절이 익산 미륵사다.
용감한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는 속담의 모델로 흠모했던 서동과 선화공주의 로맨스가 자칫 역사의 미궁으로 남게 될지 모른다.
이번에 발견된 익산 미륵사지석탑(국보 제11호)의 금제사리봉안기(金製舍利奉安記)에 의하면 그 백제 왕후가 선화공주가 아닌 좌평(佐平)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이라는 해석이 유력하기 때문이다.(san109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