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물(人物)이다. 인물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창조되지만 그 인물이 갖는 복잡한 심리와 행동을 통해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발현하게 된다.
대개의 경우 고대 소설류에서의 등장인물은 신(神)이다. 따라서 신의 이야기 곧, 신화(神話)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신이 소설 무대에서 퇴장하고 그 자리를 기사(騎士)나 영웅(英雄)이 대신하게 된다. 소설사적으로 이런 시기를 로만스라고 하는데 17세기 초엽까지 유럽을 중심으로 성행하게 된다.
그러나 완전한 소설(novel)일 수는 없다. 18세기가 되어 중세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하면서 소설의 등장인물은 초인(超人)이 주류를 이룬다.
근대소설은 대개가 출중하거나 보통사람과는 무엔가 다른 특별한 인물을 그린다. 이들은 지도자적 성격을 가지는 특성이 있다. 1935년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현상모집 당선작인 심훈(沈熏)의 장편소설 『상록수』의 주인공 박동혁과 채영신이 좋은 예다.
현대소설로 넘어오면 소설의 주인공은 보통사람이 된다. 먹고 자고 마누라와 잠자고 사는 일이 어려워 고민하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엿보게 된다. 그렇다면 미래의 소설에는 어떤 인물이 그려질까? 신→영웅→초인→지도자→보통사람이라는 도식으로 미루어 보면 아마도 보통이하의 졸부거나, 바보스러운 사람을 등장시켜 현대인의 고독과 허무를 확인하게 될 것이 뻔하다.
그러기 때문에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재능의 하나가 유머(humor)다. 유머는 그냥 웃기는 행위가 아니고 「복잡한 정신적 자극으로 마음을 즐겁게 하거나 웃음이라는 반사행동을 일으키는 의사소통의 한 형태」로 정의되는 문화의 한 부류다.
고전적 유머는 신체 행동으로 나타나지만 현대적 유머는 말로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 과거 「유머일번지」와 같은 기승전결식 코미디류는 언어보다는 몸으로 웃기는데 치중했다면, 오늘날의 개그(Gag)는 미리 정해진 각본 보다는 임기응변의 말로 청중을 웃기게 된다.
대표적인 개그 프로그램으로 우리가 흔히 「개콘」이라 부르는 개그콘서트가 있다. 본래는 대학로에서 활동하던 스탠드업(Stand-Up)식 코미디를 1999년 9월 KBS에서 공개방송형식으로 시도하면서 시청자의 시선을 묶어두는데 성공했다.
지난해 개콘은 KBS 연예대상에서 총 4개 부분의 상을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그 날 남여 우수상을 받은 개그맨 황현희와 박지선의 수상소감이 백미였다. 황회장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개그콘서트」를 한 번도 「나쁘다」는 생각을 안 해봤는데 어느 단체가 「올해의 나쁜 프로그램」으로 선정했다는 것과, 나라가 어렵고 경제가 어려울 때 진정 국민에게 웃음을 드리는 시간의 의미를 잘 생각해주길 바란다. 그래서 계속해서 영혼을 팔아서라도 웃겨드리겠다는 내용이었다.
「자기외모 비하의 달인」 박지선은 눈물 흘리며 한 소감도 가슴을 찡하게 울렸다. 「아시는 분도 있지만 제가 피부 트러블이 있어서 화장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어색하게 맨 얼굴로 무대에 섰습니다. 그러나 20대 여성으로서 화장을 하지 못하는 것에 슬픔을 느끼기 보다는 20대 개그우먼으로서 분장을 하지 못해 더 웃기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는 개그우먼이 되겠습니다. 나 박지선, 신부 화장보다 바보 분장을 하고 싶다!」
웃음을 줄 수 있다면 더 망가져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개그맨이다. 치열한 아이디어와 아이템을 통해 웃기지 않고는 살아남지 못하는 이들의 고뇌를 우리는 쉽게 보아 넘길 수 없다. 무대에 서서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하던 그들이 시상식에서는 눈물을 흘려야 하는 그 아름다운 눈물의 의미를 간과할 수 없다.
「PD수첩」이나 「KBS스페셜」 같은 프로그램은 좋은 프로그램이고 그걸 보는 시청자는 수준 높은 시청자고 「개콘」은 저질 프로그램이고 그걸 보고 앉아 히죽히죽 웃고 있는 사람은 저질로 치부하려는 참 옳지 못한 사회적 시선이 문제다.
웃음은 긴장으로부터의 해방이다. 현대의학에서도 웃음치료의 효능을 인정한다. 웃음은 삶의 윤활유요, 살아가는 재미요, 일상의 조미료다. 특히 개그 프로그램은 익살의 대상이 누구든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소재 역시 그 어떤 것도 피해갈 수 없다. 만일 코미디를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된다. 관객을 비하해서는 안되고, 무례한 내용을 담아서도 안된다는 식의 올바름만 표현하라 한다면 그건 억지다.
개그속에 담겨 있는 풍자를 음미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보통사람들의 일상을 도덕적 기준이나 정치적 올바름으로 잣대를 대지 말자.
그렇잖아도 웃을 일 없는 참 힘든 시기에 웃음을 주는 그들이 있어 즐거워해야 한다. 즐거워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즐거운 한 해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