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면 지명알기
남부면 지명알기
  • 최대윤 기자
  • 승인 2009.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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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의 관광자원을 자랑하는 거제의 관광 1번지인 남부면은 명승2호 해금강, 도장포 신선대와 바람의 언덕, 홍포 대·소병대도, 함목·여차·명사해수욕장 등 빼어난 볼거리와 체험장,  해상낚시는 물론  생선회 돌미역 멍게 멸치 등 다양한 먹거리가  유명하여 사계절 전국의 관광지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탑포(塔浦)마을

본래 마을 앞에 대섬 또는 거북섬이 있고 개안이 얕고 잔잔하여 민물때 들어오는 고기를 갓후리 그물로 고기를 잡았다하여 망포라 하였는데 길손이 도를 모아 누석단을 만들어 마을을 지키는 서낭신에 고사를 올려 탑포라 하였다.

○쌍근(雙芹)마을
탑포의 서남쪽 끝에 있는 갯마을로 본래 쌍나래라 하였으며 율포만에 접하는 쌍나래 또는 쌍나리와 저구만의 미날기미가 미나리와 상통하여 쌍근이라 하였다.

○달뜬바위 - 탑포에서 학동으로 넘어가는 질아래 왼쪽에 달 모양의 바위가 높이 있다.
○대섬 - 탑포 앞에 있는 섬으로 옛날 대나무가 있어 대섬 또는 죽도라 하였으며 면적 10,810m이다.
○들맞이재 - 탑포에서 학동으로 넘어가는 큰재로 탑포는 질마재라 하고 학동은 들맞이재라 한다.
○배나무실마을 - 탑포 남쪽에 있는 갯마을로 배나무가 있었다.
○불막등마을 - 탑포와 서북쪽 율포리의 경계에 있는 촌락이다.
○새발목등 - 질마재의 왼쪽 능선에 억새가 많은 등성이다.
○소쿠리바위 - 가라산 밑에 소쿠리 모양의 바위가 있다.
○시루봉 - 탑포마을뒤 오른쪽에 시루 모양의 봉우리가 있다.

○이홉산재 - 탑포에서 저구리로 넘어가는 재로 가라산 중허리의 등성이 아홉개를 돌고 돌아 넘는다는 뜻이다.
○주전골 - 탑포마을 위 산기슭에 옛날 엽전을 만든 굴이있어 일제말때 전술도로를 개설하는 현장에서 엽전을 줍기도 하였다.

○탑포산성(塔浦山城)
탑포 남쪽 413.6m의 탑포산 봉우리에 둘레 233m높이 4m의 산성이 있는데 이는 왜적을 감시하던 망성이라 하며, 삼각점(三角点)이 있다.

○다포(多浦)마을
본래 작은 다대라 하였는데 다대만의 서쪽에 위치하고 안가의 땅끝이 뾰족하게 튀어나와 호수같은 또 안개가 형성되어 풍랑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니 다포라 하였다.

○여차(汝次)마을
작은 다대의 등넘어 남쪽에 있고 앞바다에 작은 대소병대도가 8개나 있음으로 이 섬들을 바라보고 지키는 곳이라 하여 여차라 하였다.

○다포배양장 - 다포마을 남쪽에 있는 수산진흥원 거제종묘 배양장)에서 광어, 넙치, 전족, 도미등 해마다 100만 마리를 배양하여 거제도 해역에 방류하고 있다.

○다포도
여차 동쪽 천장산 밑 땅끝 바다에 다포도 8,430㎡와 소다포도 1,581㎡가 나란이 있다.

○대소병대도
여차 서남쪽 가마귀개 앞에 소병대도 3개 면적 26,480㎡와 그 남쪽 대병대도 5개 면적 56,430㎡의 무인도가 부용같이 점점이 모여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관광낙원을 이룩하여 관광유람선의 코스이며, 미역의 원산지이기도 하고 뽈락과 감성돔의 낚시터이다.

○ 여차해수욕장
학동의 몽동해수욕장보다 규모는 작지만 바닷물이 따뜻하고 맑아 몽동이 깨끗하고 아름다워 많은 피서객이 찾아든다.

○천장산성
1904년 노일전쟁 때 일본군이 포대를 설치하였던 왜성터가 있으며 높이 275m의 봉우리에는 1914年 5月 1日 지적의 세부측량을 시작할 때 일본의 대마도에서 32해리 60km를 삼각점으로 측량하여 경상남도 第1號를 매설하여 우리나라 지적도의 시발점이 되었다.

○천장산 신단 - 우리나라 최동남단에 위치하여 천장산신의 제단을 쌓고 천신제를 올렸는데 일본군의 포대설치로 마을에 옮겼다.

○저구마을
본래 저구 말방으로 왜구 또는 어선들이 풍랑을 피하여 드나들던 포구로 도토구지, 도토지라 하였는데 1958年 4月 1日 동부면 저구지소, 이듬해 출장소로 승격하고 1968年 8月 1日 남부면 승격을 신청하여 1983年 2月 15日 남부면이 설치되었는데 저구리로 남부면 남포리로 개명 신청하였으나 법정리의 변경이 불가해 행정리 갈곶을 해금강 마을로 변경하였음으로 남포마을로 갈망하고 있다.

○명사(明沙)마을
본래 명사동) 또는 밀개라 하였는데 저구만의 남쪽 망산)이 막아 바다가 잔잔하고 얕아 갯벌이 넓은 백사장이라 거제의 명사십리(明沙十里)라 부르며 해수욕장을 개장하고 있다.

○근포(芹浦)마을 - 본래 작은개 또는 미날기미라 하였는데 이곳은 미나리가 잘자라고 해조륙도 풍성하여 근포라 하였다.

○대포(大浦)마을 - 미날기미 남쪽 마주보는 큰개  마을이라 대포라 하였다.

○홍포(虹浦)마을 - 거제도의 최남단 한산면의 가오리섬과 마주하는 갯촌으로 저녁노을에 무지개가 뜬다하여 무지개라 하였다고 전래되고 있다.

○가문여 - 저구 북쪽에 있는 작은 바위섬이다.
○도토구지재 - 저구에서 탑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문개 - 저구 북서쪽에 있는 개이다.
○등생이끝 - 대포 서남쪽에 있는 모퉁이 끝이다.
○ 망골 - 저구 동쪽에 있는 골짜기다.
○망산 - 명사 남쪽 대포 동쪽에 있는 산에서 옛날 망을 보았다.
○솔라끝 - 저구에서 명사로 가는 모퉁이에 송림이 울창하다.
○아홉등산 - 저구 북쪽에 아홉개의 등성이가 있는 산이다.
○칼바위 - 명사 남서쪽에 칼날 모양의 바위가 있다.
○하미장골 - 명사 남동쪽에 있는 골짜기다.

⊙다대리
영조 45年(1769) 방리 개편으로 고다대포방이라 하였는데 고종 26年(1889) 큰 다대를 다대리로 작은 다대를 다포리로 분리하여 1915年 6月 1日 법정리가 되었으며 오늘의 행정리로 있다. 고다대포는 선조 25年(1592) 임진왜란때 부산의 다대포가 있었음을 옛날의 다대포에 수군첨사를 두었다가 부산으로 옮겼다는 뜻이며 5月 7日 옥포대첩의 전날 밤 이순신 함대가 머물었다

○가라산 봉수대 - 거제도의 수봉 높이 585m 가라산에 있는 봉수대는 대한해협을 지키는 전초기지로 동에는 옥녀봉, 북으로 계룡산, 서로는 통영의 미륵산 봉수대와 연락하던 곳이며 높이 2.5m 직경 40m 석축위의 큰 봉수대를 지방기념물 第147號로 지정관리하고 있다.

○가매자리봉 - 다대의 동쪽 한목쪽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산이다.
○갈라진 바위 - 가라산 밑에 갈라진 바위가 있다.

○긱대넘개 - 가라산 밑 동쪽에 1915년 세부측량때 측량의 깃대를 세웠던 산으로 높이 305.2m넘어 다대만에 접하는 개이다.

○다대산성
가라산 밑 중허리에 신라 경덕왕 16年(757) 거제삼속현중 송변현의 진성으로 쌓았다하며 둘레 395m 높이 3.3m로 고려 원종 12年(1271) 왜구로 인해 거창현으로 피난가자 부산 다대포로 옮기고 이곳을 고다대포라 하였다.

○다대재 - 다대에서 학동으로 넘어가는 큰 고갯길이다.
○망골 - 가라산 봉수대에서 앞바다의 망을 보았으니 그 밑을 망골이라 한다.
○먹어나 구망등 - 가라산 아래등성이에서 동쪽의 해 뜨는 모습을 바라보던 등성이다.
○벼락바위 - 다대재의 동쪽에 옛날 벼락을 맞았다는 바위가 있다.

○송미포
선조 25年(1592) 5月 7日 옥포대첩의 전날 통영의 당포에서 이순신과 원균수사가 만나 해전을 숙의하고 천성 가덕도로 항진하다 날이 저물어 머물었다는 송미포를 장목면 송진포라는 설이 있으나 해류상 불합리하고 송진은 참솔인 적송을 말하고 송미는 참솔아닌 흑송또는 해송으로 1990年 옥포대첩에 진해통제부 박물관장 조성도가 이곳 다대포의 옛 이름이 송변현의 송미포임을 해도와 함께 인증하였다.

○시리미들 - 다대 뒷산 시리미봉 밑에 있는 들이다.
○아래먹어난 구멍 - 가라산 밑에 구멍이 있는 바위가 있다.
○안장걸이 바위 - 다대산성 밑 망골에 말의 안장 모양의 바위가 있다.
○애바위 - 가래봉 봉수대 밑에 있는 바위다.
○영북산 - 가라산 밑 한목쪽으로 가매자리봉에 있는 산의 높이 305.2m에 삼각점(三角点)이 있다.
○윗대밭골 - 망골위에 큰 동백골 그 위에 있는 대나무가 있는 골짜기이다.
○조개발넘개 - 당메 왼쪽에 있는 바닷가이다.
○조금배골 - 다대재 밑에 옛날 조공의 세곡을 모우던 곳이라 한다.
○큰동백고랑 - 망골 위에 있는 골짜기에 흐르는 계곡이다.

○해미당재 - 다대에서 가라산 밑으로 골짜기 따라 탑포로 넘어가는 길고 먼 재는 아홉구비를 지나야 하는 첫번째 구비를 해미당재라 한다.

⊙갈곶리(乫串里)
영45年(1769) 방리 개편때 갈곶이와 학동을 합쳐서 갈곶방이라 하였는데 고종 26年(1889) 면리제 개편으로 학동리가 분리되었으며 1915年 6月 1日 도령 第20號 법정동리령에 따라 갈곶리로 법정되었고 1942年 5月 1日 부락구제로 갈곶과 도장포의 2區가 되어 1961年 10月 1日 거제군조례 第4號로 행정리가 되었으며 1995年 1月 14日 거제시조례 第112號로 갈곶마을을 해금강마을로 개칭하였다.

○해금강마을
본래 칡섬을 갈도와 반도 모양의 땅끝으로 땅이름 갈과 땅끝 곶으로 갈곶이라 하였는데 1971年 3月 23日 명승 第2號 거제해금강이 지정되어 자연적으로 해금강이라 부르게 되었다.

○도장포마을
갈곶이 갈개의 서북쪽에 위치하여 학동만의 안바다로 파도가 잔잔하여 대한해협을 지나가는 배들이 쉬어가는 곳이므로 옛날 원나라와 일본등을 무역하는 도자기 배의 창고가 있었다하여 도장개라 하였다는 구전 있다.

○갈도
해금강의 섬으로 기암절벽에 거제삼란인 춘란), 풍란, 석곡란을 비롯한 620여종의 아열대식물이 대자연을 이룩하여 칡섬 갈도라 하였는데 갈개 앞이라 갈곶도라 부르기도 한다.

○견우직녀송
갈섬의 동편 십자동굴의 입구 100m높이의 암벽 양쪽에 천년넘은 소나무 두그루가 마주보고 있으며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를 사이에 있는 형상이라 견우직녀송으로 부른다. 현재는 태풍으로 인해 한그루만 남아있다.

○구망개
한목에서 학동으로 가는 길 밑에 외딴 갯마을이 있었으나 독가촌으로 1960년대에 이주시킨 바닷가를 구망개라 하였는데 이는 거제도의 동남단 대한해협을 바라보는 곳으로 해가 일찍뜰 구와 바라볼 망의 곳으로 구망이라 하였으며 지금은 국도에 구망휴게소가 있다.

○국개 - 도장개 동쪽 삼밭등 밑 망너머에 있는 개이다.
○누운바위 - 갈개에 있는 바위가 누워있다.
○대항 - 갈곶반도로 들어가는 큰목이 남북의 바다가 깊숙히 들어와 이를 대항또는 한목이라 한다.
○돛단섬 - 갈섬 남동편에 돛을 단 모양의 바위섬이 있다.
○띠밭늪 - 도장개 동쪽에 갈대밭의 늪이 있다.
○망넘에 들 - 띠밭늪 너머에 밭들이 있다.
○목넘에 들 - 한목 너머에 학동쪽으로 밭들이 있다.
○삼발등 - 도장개 동쪽에 봉우리가 세개인 산이라 하며 높이 155.2m에 삼각점이 있다.
○새바위 - 망너머 국개옆 바닷가에 새 모양의 바위가 있다.
○서가람산 - 갈개 서남쪽에 있는 산이다.

○서불과차지(徐市過此址)
서기전 BC221年 진시황의 장생불로초를 구할려고 서불(서복)이 동남동녀 3천명을 거느리고 봉래산 (지금의 강원도 금강산으로 가는 중 거제해금강을 지나갔다는 서불과차라 암벽에 조각하였는데 지금은 이끼가 끼어 잘 보이지 않으며 서불은 부산 앞바다에서 파도를 만나 일본 화가산현 신궁에 표류되어 그 의 묘가 있다한다.

○석개 - 갈개의 서가람산 밑에 있는 개이다.

○십자동굴
갈섬 복판에 동서로 통하는 동굴이 있으며 동편에 두개의 높은 바위섬이 120m하늘 높이 솟아 천영동굴을 이룩하여 십자로 형성되어 서로 통함으로 관광선이 드나들어 십자동굴이라 한다.

○여앞섬 - 갈개의 누운바위 옆에 있는 작은 바위섬이다.

○일월관암
갈개에서 정동쪽 갈섬의 북단에 있는 높고 큰 돌섬으로 본래 사자를 닮아 사자바위라 하였는데 해금강여관에서 춘추분에 바라보면 갈섬과 사자바위 사이로 해와 달이 떠 오르는 광경은 거제해금강의 대자연에서만 볼수 있는 절경으로 일출, 월출, 일월관암이라 이름하였다.

○천년학송
갈섬의 십자동굴 입구 동북쪽 바위섬 100m높이 절벽에 소나무 한그루는 가로 뻗어 자라 학이 앉았다 날아갈려는 형상이며 몇천년이 지났는지 아는이가 없으니 천년학송이라 이름하였다.

○한목마을
갈곶반도의 입구에 남쪽은 다대만이고 북쪽은 학동만으로 양쪽바다가 깊숙한 큰목으로 한목이라 부르며 국도 14호선의 삼거리에 있는 자연촌락이다.

○혹돔재 - 도장개에서 갈곶이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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